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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사태로 본 한국사회 이념갈등 ③] 진보-보수 용어는 한국 특산품

 

"진보는 나의 것'"... '사색' 진보의 쟁탈전

[조국사태로 본 한국사회 이념갈등 ③] 진보-보수 용어는 한국 특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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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그런데 저희들 향해서 맨날 앞에서 친북 붙여가지고 친북좌파다, 심지어 종북좌파다 말끝마다 그러니까 좌파라고 해서 싫은 게 아니라 그걸 그렇게 꼭 연결을 시키니까. 과거에 툭하면 친북으로 몰고 용공으로 몰아서 사람 죽이고 잡아 가두고 했던 그 악몽이 살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이제 좌파, 우파라는 표현보다는 보수, 진보 이렇게 표현하는 쪽이 좀 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준표= 보수, 진보가 아니고 좌파, 우파라니까? 근데 어떻게 좋은 말은 자기들이 가져가고 인식 나쁜 말은 우리보고 하라고 하니까 그게 무슨 경우야? 그건 아니지.

유시민= 억울하시죠?
홍준표= 억울한 게 아니고 잘못 용어 정리를 하고 있다 이 말이야.

11월 22일 KBS TV '정치합시다' 첫 방송에 자유한국당 전 대표 홍준표와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이 출연했다. 여러 정치현안에 대해서 토론을 했는데 시작하면서 양 진영을 규정하는 이름에 대해서 언급했다. 유시민은 진보-보수가 좋다고 했고 홍준표는 좌파-우파가 맞다고 주장한다.   

'진보-보수'란 용어는 한국 특산품

연세대 교수 김호기가 언젠가 논문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이념문제 연구자들 숫자가 적고 학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지금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졌음에도 참고할 연구논문을 찾기 어렵고 기초적인 문제들이 혼돈속에 방치돼 있는 이유다. 대표적 사례가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개념 규정이다. 

유시민의 말처럼 좌파라고 하면 친북 용공이 연상되어서 거부감이 느껴진다. 좌파 대신 진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 그 이름만으로 불로소득을 얻게 된다. 홍준표가 "그게 무슨 경우야"라고 불만을 토로한 것이 이해된다. 몇 해 전에 어느 사회학 교수가 수강학생들을 대상으로 물었다고 한다.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중 6명인데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명밖에 안됐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 중에 위협을 느낀 영국의 귀족 출신 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저서에 등장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학문적 족보가 있는 사회과학 개념이다. 그러나 진보는 특히 진보주의는 뿌리가 없는 말이다. 이 사실을 동국대 교수 홍윤기가 2002년 발표한 논문에서 밝혔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진보주의를 서양의 사회과학사전에서 찾아보니 항목 자체가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말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0년대 중반경부터 언론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등장한 좌파가 세력화하자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주의와 달리 진보(프로그레스)는 서양에서도 이따금 사용된다. 그러나 '진보-보수'가 쌍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지구촌 어느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국특산품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주로 보수 혁신, '보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진보는 나의 것" 진보쟁탈전 치열

정체가 모호한 채로 한국정치의 키워드가 된 진보는 각 정파가 서로 차지하려는 대상이 되었다. 좌파, 자유주의자, 사전적 의미의 진보파, 심지어 보수도 "진보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보쟁탈전이라 부를 만하다. 다음은 몇 해 전의 사례인데 여기에도 유시민이 등장한다. 

2011년 3월 진보대통합을 논하는 프레스센터 토론회에서 좌파의 대표격인 노회찬과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함께 앉았다. 이때 노회찬이 우리와 함께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쪽으로 오시오"라고 했더니 유시민은 "아니 내가 진보인데요"라고 말했다. 양정파의 수장격인 두사람이 봉숭아 학당같은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노무현은 정치적 동업자였던 유시민과 이념적 색깔이 달랐다. 노무현은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좌파를 자처한 기록도 찾기 어렵다. 그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자는 사전적 의미의 진보였던 것으로 추정된

참고로 필자가 조사한 출판계의 일화를 소개한다. 미국의 사회과학 원서를 번역하다보면 리버럴리즘이 수없이 등장한다. 한국의 출판계는 이것을 자유주의가 아닌 진보주의라고 번역한다. 폴 크루그먼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의 번역자는 이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고 역자의 글에서 고백했다. 일종의 내부고발로 들린다. 리버럴을 진보주의자라고 번역한다면 프로그레스는 무엇으로 번역했을까. 필자가 직접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 번역자를 만나서 물었다. 그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노회찬 유시민 노무현과 같이 이념의 결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한다. 이뿐 아니다. 보수 이데올로그인 조갑제는 2005년 국민대 강연에서 "보수가 진보다"라는 거꾸로 선 말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말이 허언은 아니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통해 민중의 빈곤을 구제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보수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박정희가 남긴 서예 글자 중에 "진취와 도전"이 경매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린 것도 참고할 만하다.

사색진보 다툼 끝에 진보 혐오증까지
        
진보 용어의 혼돈이 실제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 통합시에 좌파도 진보, 리버럴도 진보인데 같은 진보가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노회찬의 진보정의당과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간에 통합이 이뤄졌다. 이런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진보대통합은 곧 실패했고 그 여파로 나타난 진보 혐오증으로 진보 탈출 러시가 일어났다. 

이때 너도나도 진보라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진보는 진부하다는 비아냥이 들렸다.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통합진보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갑제의 영향을 받아 명명한 것으로 보이는 뉴라이트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만이 진보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은 이념갈등을 희화화시키고 무질서의 도가니로 밀어넣는다. 결과적으로 갈등을 악화시킨다.

진보라는 가짜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네 정파가 각축하는 모습을 필자는 사색당파를 패러디 해서 '사색진보'라고 이름 지었다. 이들이 진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혼돈은 이념갈등 이전의 문제이다. 이념 자체가 복잡한 세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난해한 데다 우리 사회 특유의 혼란이 더해졌다. 그래서 진보 보수 좌파 우파 이념을 거론하면 다들 골치아프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런 혼돈으로 인해 실생활에서 겪는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저녁에도 직장인 동료들이나 대학생 친구들이 모여 술을 한 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가 안주로 올라온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진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같은 말이지만 제각기 부여한 함의가 달라서, 말이 얽히고 꼬여 불필요한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다. 

세계 학계에 보고해서 국제적 공동연구에 나서도록 하고 싶다. 그 이전에 양진영의 연구자들이 만나 진보 보수 용어의 의미를 규정하는 학술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필자의 의견을 붙이자면 좌파는 왼쪽으로 진보하자는 것 우파는 오른쪽으로 진보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대혼란으로부터 탈출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홍준표 유시민처럼 이런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다시 보고싶지 않다. 

[조국사태로 본 한국사회 이념갈등 ②] 좌우를 나누는 다양한 기준

 

조국 사태, '구역질' 발언을 놓치면 안된다

[조국사태로 본 한국사회 이념갈등 ②] 좌우를 나누는 다양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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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이념갈등 원인은 무엇인가.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특징이 있는가. 서양의 좌우 갈등양상이 한국사회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한 이념교육 부재, 주자학의 영향 등 한국 사회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좌우를 나누는 기준 중 으뜸은 인간관의 차이

좌우를 나누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자유와 평등, 유물론과 유심론,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성선설과 성악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존재론과 관계론 등등. 그 중 으뜸은 성선설과 성악설 즉, 인간관이다. 

베를린 장벽에 이어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직후인 1991년 1월이었다. 운동권에 '사상의 은사'라 불리던 리영희는 한동안 침묵 끝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사회주의 실패의 원인을 잘못된 인간관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규정 위에 이론과 체계를 세웠는데, 잘못된 기초 위에 섰기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리영희는 인간 속성 중에 3분의 1만큼 사악함과 이기주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뒤 리영희는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발언을 남겼다. 

보수의 인간관은 성악설이다. 동양의 순자, 서양의 토마스 홉스가 철학적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보수우파는 인간의 사악함과 이기주의를 50% 이상 인정한다. 60-70%면 중도우파, 90%를 넘으면 극우다. 뉴라이트 학자 이영훈의 책 <반일 종족주의>를 열면 첫 페이지에 '거짓말의 나라'라는 제목의 프롤로그가 실려있다.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 하는 민족이라며, 그 근거로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즉 무고 건수가 일본의 500배, 보험사기는 미국의 100배라는 2014년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 
  

조국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임한 직후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구역질 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때가 8월 5일이었다. 그리고 나흘 뒤인 9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다. 대한민국 보수가 총궐기 해서 그에게 몰매를 가한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이 발언을 놓치면 안된다.

보수로서는 조국의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격을 가하기 위해 조국 딸의 입시부정과 동생의 사학비리 등 가족의 의혹을 제기해 그 역시 이기적인 인간임을 입증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언론들은 조국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끝없이 의혹을 제기했다. 해명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조국처럼 깨끗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도 "조국 같은 반칙왕을 어디서 봤다는 건가"라고 반문한다. 

조국은 좌파의 특성 중 하나인 고지식함이 잘 드러나는 인물이다. 가족이 당하는 극심한 수난을 지켜보면서도 장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내려가자 비로소 사퇴했다.

홍세화의 관용, 표창원의 정의

좌우 이념을 연구하다 보면 여러 개념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마리를 하나씩 잡아내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 망명객 출신 홍세화는 90년대 한국 사회에 톨레랑스(관용)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해 관용이 사회주의의 가치인 듯이 받아들이게 했다. 영국에서 유학했던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그의 책 <보수의 품격>에서 정의가 보수의 가치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에 관용이 올라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 보수당이 정의를 외치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좌파와 우파는 오랫동안 중도화 과정을 거쳐 왔다. 중도화란 상대의 장점을 일부분 가져다 쓰는 방식이다. 그래서 중도좌파, 중도우파라 불린다.

영국 보수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좌파에게서 정의를 차용해 자기 것인양 사용해왔으며 프랑스 사회당은 당의 강령 중 하나로 우파의 미덕인 관용을 걸어두고 있다. 1960년 발행된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극좌와 극우가 지배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뜻이다. 동시에 중도좌와 중도우가 경쟁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두가지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프랑스 사회당이나 영국 보수당이 일관되지 않고 분열적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진화된 결과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라는 상반된 것으로 만들어져 있고 동시에 두 가지의 다른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런 이중성은 인간의 생래적인 속성으로 천부의 조건이다. 이념의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인간 조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념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양동안의 친북, 임혁백의 친노동자

전직 교수 양동안과 임혁백은 <시대 정신> 2010년 여름호에서 '한국의 보수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지상 토론을 펼쳤다. 토론 중에 좌파, 좌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양동안은 친북, 임혁백은 친노동자라고 말했다. 

좌파가 친북이라는 양동안의 논거에서 출발하면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망해가는 나라 북한 왕조체제를 떠받드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임혁백은 다수의 소외된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므로 보다 인간적이다. 그러니 좌파에 정당성이 돌아간다.

이처럼 각기 다른 논거에서 출발하니 좌파가 그르다 또는 옳다는 상반된 결론에 이른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펼쳐나가므로 끝없는 이념 분쟁은 피할 수 없다. 이같은 혼돈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155마일 휴전선에서 GOP 근무하는 병사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오면 저마다 자기가 본 철책선 풍경을 이야기한다. 어떤 예비역 병사는 철책선 주변에 나무가 많고 안개가 많이 낀다고 말한다. 다른 병사는 바위가 많고 관목수풀이 있다고 말한다. 초소마다 보이는 산과 언덕 등 지형 지세가 다르고 경관이 다르다. 

두 해 동안 GOP 근무를 한 병사에게는 자기가 근무하며 본 지점이 휴전선의 전부일 것이다. 이들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를 꽃 피우며 서로 자기가 본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다툰다. 

좌우이념이 충돌하는 접점도 100여 개를 능히 꼽을 수 있다. 좌우 분쟁 현장을 지켜보면 양쪽은 양동안-임혁백처럼 각기 자신이 본 것을 즉,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들이댄다. 서로 겨누는 창끝의 방향이 엇갈린다. 양쪽의 의견이 틀리지 않은데도 타협없는 싸움으로 비화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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