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에 대하여

(5) "한다면 한다"와 "하면 된다" 

세계로김 2018. 10. 13. 12:52


"한다면 한다"와 "하면된다"는 모두 정신의 각성, 불굴의 투지,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와 자신감등을 표상한다. 둘다 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것이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중에서 "한다면 한다"는 상대방에 보다 공격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각기 북한 버전과 남한버전이라고 구별해서 볼 수 있다. 

 

세계최강의 미제를 주적으로 했던 북이 인민들을 군사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한다면 한다"라면, "하면 된다"는 60-70년대 박정희시대에 경제적인 동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영어로는 icandoism으로 불린다. 대영백과사전에 등재된 "빨리빨리"와 함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잘보여주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은 옆의 그림들을 살펴보자. 위의 것은 북한 포스터로 보이는데 전투병이 미국을 주먹으로 치는 그림과 함께 "한다면 한다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아래 그림은 “하면 된다”는 제목의 영화포스터이다. 비장한 얼굴을 한 등장인물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포즈를 취한다. 그러나 ‘엽기코미디’ 물이기에 국기가 아니라 “웃음에 대한 맹세!”이다. “통쾌하게 (관객들을) 뒤집겠습니다”라며 다짐한다.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목적에서 생산된 두장의 그림에서 필자는 커다란 공통점을 본다.

  

남과 북은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었지만 같은 민족이고 나뉘어져 살면서도 각기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이같은 유사한 조건이 유사한 지배이념을 낳았다. 개념적으로 설명하면 너무 재미없고 복잡하니 황장엽 스토리를 사례로 들어보자.

  

황장엽이 남으로 귀순해서도 사상전향을 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거물이라 주체사상의 창시자라서 예외적인 예우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주체사상에서 남쪽을 향한 공격성만 제거하면 남쪽의 지배이념과 내용이 별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장엽이 그의 사상으로 남의 청년들을 의식화하겠다고 공언하는데도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황장엽은 요즘같이 경제문제로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그의 주체사상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주체사상의 핵심은 "자신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어서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말이 얼마나 혁명적인가는 이것이 나온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마나한 말로 들린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뒤집으며 탄생했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세계에서는 일정한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수 없는 일이 있다. 이에 비해 주체사상은 할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고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3대요소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중 의식성에 해당한다. 한다면 한다는 이 의식성을 잘 표현한 말이다. 의식성은 이념성격상 우파적이어서 80년대에 PD(민중민주파) 측의 비판을 받았고 유럽좌파에게 외면받는 이유가 됐다.  

  

황장엽의 주체사상은 우리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다. 이미 남한경제발전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하면 된다"와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수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360도를 한바퀴를 돌아서 원위치로 돌아와버렸다. 그래서 남의 것과 만나게 됐다. 북한의 지배이념과 남한의 지배이념은 "한다면 한다"와 "하면 된다"이다. 그렇다면 남의 것과 별 차이도 없는데 왜 그처럼 오랫동안 북의 것을 사갈시해왔을까, 알고보면 기가 막힌 일이다. 이건 연방제 논리와 흡사하다. 

  

연방제는 힘이 강한 쪽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60년대부터 70년대초반까지 북이 경제적으로 앞섰다. 이때 김일성이 연방제를 들고나왔다. 이대로 하면 남이 먹할게 뻔했다. 그런데 지금은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만일 북한주민에게 남한의 텔레비전이 허용되면 몇달 안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과거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그런 사례가 있다. 전파교류를 가장 두려워한다. 요즘 북한이 휴전선에서 대북방송 재개하겠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과 북이 반세기 이상 다른 체제에 살면서 매우 이질화돼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지배 이데올로기의 은밀한 부분이 서로 일치한다면 통일도중이나 통일후의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