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에 대하여

(6) 주체사상과의 첫 만남

세계로김 2018. 10. 13. 12:53

80년대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일했던 내 사무실의 책상에는 북한책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책들을 어디서 구입했느냐고? 당시 출처가 알려지면 여러사람이 고초를 겪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감추었지만 이제는 20년이 지났으니 공소시효도 훨씬 지났다. 당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친구들을 통해서 주로 구입했다. 비밀자료로 구분됐지만 의원 보좌관이 국회도서관의 담당자에게 하루 정도 보고 갖다주겠다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빌린 책들은 복사집을 빌려서 밤새 복사했다. 

  

당시 필자는 북한 책 출간의 물꼬를 텄다해서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80년대의 출판인중 하나로 선정됐었다. 그랬으니 필자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북한 책을 누구보다 먼저 볼수 있었던 사람이다. 특히 북한의 3대소설이라 불리는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자위단원의 죽음등을 읽다보면 밤새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읽게 된다. 출판사 영업부장들 사이에서 눈이 부은 채 서점에서 만나면 또 그책 읽었느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의 책중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주체사상을 설명한 책들이다. 그런데 이 책들을 읽다보면 도무지 머릿속에 건더기가 건져지질 않고 모두 숭숭 흘러가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됐었다. 학생운동권에서 선배들의 체계적인 학습지도를 받아가면 읽던 입장이 아니어서 혼자서 독학을 하다보니 도무지 읽혀지질 않았다. 그뒤로 왜 그랬나 오랫동안 의구심이 들었는데 주체사상을 이해하고서 비로소 그 현상이 이해가 됐다. 

  

주체사상의 3대요소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인데 그중 주체사상을 특징짓는 것은 의식성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다” 이런 것이 의식성인데 이게 도대체 왜 그리 무서운 주체사상의 핵심이란 말인가, 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위험시하는 남한 반공정부의 입장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주체사상을 이해하려면 다시 말해 주체사상의 특이성을 잘 이해하려면 먼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유물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길로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유물론의 세계에서는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과학적 유물론으로 판단해 보면 답이 나온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해낼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의식성이 탄생한다. 모진 고난에도 불굴의 투지를 갖고 극복해냈던 만주 밀영의 경험에서 보면 안되는 일이라고 포기할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에서 나온 주체사상의 의식성은 한마디로 하면된다 한다면 한다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하면된다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한 자본주의 발전의 지배이념이었으며 박정희와 정주영의 이념이었다. 이미 남한의 지배이념에 익숙해 있는 사람에게는 북한의 것이 아무런 거부반응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같은 주체사상의 속성이 관념론이고 우파적이라면서 비판했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NL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인 PD가 대립하는 것이다. 이들의 갈등의 뿌리는 이처럼 깊고 원천적이다. 

  

북한의 김일성주의는 왼쪽으로 한껏 나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온 셈이다. 결국 제자리에 돌아온 것인데 그러니 그같은 사상투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읽혀져서 오히려 납득이 안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나의 의문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