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에 대하여

(7) 황장엽, 남한에 주체사상 파급시키려 했다? 

세계로김 2018. 10. 13. 12:54

황장엽 전비서의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좌파는 반대, 우파는 찬성의 구도를 보이고 있으나 우파 진영 일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반대의 근거이다. 주체사상의 대부로 알려진 그는 남한에 와서도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발전, 파급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에게는 황당한 말로 들릴만하다. 

 

13일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발전시키려 했던 의도가 강했다"며 "주체사상은 북한 인권 문제와 다른 문제로, 차라리 주체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더 개선해 파급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혼란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도 같은 날 당회의에서 “황 전 비서는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분이고 오늘날 북한의 현실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분은 남한에 와서도 주체사상을 부정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좌파논객 진중권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황장엽은 전향한 적 없습니다. 그는 투철한 김일성주의자이며, 원본 주체사상가죠. 그저 김정일과 사이가 나빴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보수우파진영 일각에서 그가 주체사상을 왜 버리지 않느냐, 혹시 위장전향한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서 줄곧 '인간중심의 철학'을 말했기때문이다. 그것은 주체사상의 별칭이다.

 

그가 남긴 글중에는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한의 청년들에게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철학 즉 주체사상의 핵심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이런 성격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목표에 이르게 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래서 고난에 찬 북한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이 되었다. 

 

주체사상을 막연히 독재를 합리화시켜준 괴물같은 것으로 여겨온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체사상을 이해하려면 전통적 좌파의 세계관과 비교해 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뒤집으며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의 차이는 무얼까.

 

과학적 사회주의에서는 일정한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수 없는 일이 있다. 인간의식은 객관적 사회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이에 비해 주체사상은 필요하다면 할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고 해야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성격은 종교적 신앙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3대요소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중 의식성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북한의 선전포스터에서 보이는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경귀는 의식성을 잘 표현한 말이다. 의식성은 우파적 관념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80년대에 PD(민중민주파) 측의 비판을 받았고 유럽좌파에게 외면받는 이유가 됐다.  

 

황장엽이 자신의 사상으로 남한 청년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내용을 알고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도 그를 만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주체사상은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이미 남한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하면 된다"와 거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180도 멀리 갔다가 다시 180도 돌아서 원위치로 와버린 셈이다. 우에서 출발해서 좌로 갔다가 다시 우로 돌아온 격이다. 그래서 남북의 이념은 일란성 쌍둥이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처럼 오랫동안 우리의 이념과 별다름이 없는 주체사상을 사갈시해왔을까. 이 문제의 구도는 연방제를 둘러싼 대립상황과 다름이 없다. 연방제는 힘이 강한 쪽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70년대 초반까지 북이 경제적으로 앞섰다. 이즈음에 북한이 연방제를 들고나왔는데 이것을 받아들였다면 남이 북에게 먹힐 게 뻔했다. 그런데 지금은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만일 연방제를 해서 북한주민에게 남한의 TV 시청이 허용되면 북의 체제는 몇달 안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방제나 주체사상이 단지 북의 것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했다. 북한은 자기들의 것이기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관성이 붙었다. 남북간의 대립이 구조화되어 연방제나 주체사상은 대립의 소도구일 뿐이었다. 요즘 남한의 진보 보수간에 벌어지고 있는 진영논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주장하고 유리한 것을 배척하는 코메디같은 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컬럼부스의 달걀이 될 수도 있다. 한다면 한다, 하면된다와 같이 남북 이념의 핵심이 일치한다면, 그러한 인식을 공유한다면 통일 과정이나 통일이후 과정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황장엽은 가족의 희생을 딛고 북한 민주화 기치를 들고 남으로 내려왔다. 그는 자신의 역정을 통해서 즉 자신의 존재로서 주체사상은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그의 말년의 10여년동안 행각은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그에게는 자연스런 것이었으며 내적 모순이 적었을 것같다. 이런 점에서는 그가 주체사상을 남한에 파급시켰다고 볼수 있다. 그 결과 우리에게 박정희 정주영의 신화와 북의 것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황장엽의 죽음을 통해 남북통일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간단한 해법 하나를 발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