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는 리버럴과 어드밴스와 라이트와 대립하지만 레프트와 레프트간에도 서로 충돌한다. 소위 엔엘과 피디의 대립이 그것이다. 


박노자씨가 그의 책에서 KTX 여성노동자들의 몇년동안의 가열찬 투쟁을 보면서 너무 놀랐다는 말을 했다. 그의 '놀라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싸우다가 도무지 안될 것같으면 그만두고 다른 가능한 길을 찾는다. 그게 바로 이성적이고 과학적 합리주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번 열받으면 KTX 여성노동자들처럼 끝까지 밀어붙인다.

 

특기할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에도 이같은 성향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주체사상에서 서양사람들이 가장 이해를 못하는 것이 의식성이다. 이게 뭐냐면 한마디로 안되면 되게 하라, 이런 것이다. 남한의 성장 신화의 동력이었던 아이캔두이즘과 다를 것이 없다. 이와 같은 과학적 합리주의와 한국인 특유의 의식성이 각각 피디와 엔엘의 뿌리이다. 이것들이 좌파내에 두 개의 머리를 형성해 서로 진보라고 주장한다. (박노자에 대해 메모해둔 것)


두개의 좌파들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2008년2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사건이다. 갈등의 뿌리는 ...간첩사건 당시 ... 일이 있었다. 엔엘 쪽의 패권주의에 맞서 피디쪽이 더이상 참을수 없다며 분당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빨갱이들끼리 왜 싸우고 분당까지 난리냐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지난 89년 5월 문익환목사가 당국의 허락없이 김일성을 만나고 와서 소위 공안정국이 만들어졌다. 이 당시 서울구치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구치소 8동하층의 독방에 있었던 나는 먼지털기 시간에 한달에 한두번 정도 같은 사동에 있었던 정치범들과 간수의 감시를 피해서 만날수 있었다. 통방은 엄격히 금하는 것이어서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화염병처벌법 제정이후 이법으로 처음 들어온 대학생 한명과 집시법으로 온 다른 대학생 그리고 노동운동하다 들어온 30대 선배와 나까지 네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귀한 자리여서인지 농담이나 하고 말수 없었다. 파티(당) 건설 문제가 주요한 화제였는데 그 와중에 30대선배가 대학생에게 말했다. 지금 해방후에 처음으로 철도노동자가 파업을 하고 있는데 대학생놈들이 지금 자빠져서 그게 뭐냐 라고 말했다. 전대협의 대학생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통일운동 차원에서 판문점으로 간다며 서대문에서 북쪽으로 진행하다가 홍제동 부근에서 막혔다. 이 자리에서 연와투쟁이라면서 길바닥에 누워서 경찰에 맞섰는데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 화염병처벌법 1호 대학생은 그럼 대학생이 노동자입니까라고 쏘아댔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각기 우선시하는 운동권 끼리 싸움이 난 것이다. 그것도 감옥에서 몰래 모여서 한 30분 이야기하는 소중한 시간을 그걸로 때웠다. 


운동권의 양대산맥이 얼마나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나는 이 두패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직접 경험했다. 그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모인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똑같은 빨갱이들이지만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다. 이념으로 나뉘어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념이란 프리즘으로 비춰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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