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연일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수 있는 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연일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있는 정강에서 보수를 빼자는 발언 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위원이 4 언론 인터뷰에서자기 스스로를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 의원은 같은 트위터에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의원 등도 비판에 가세했으며 자유총연맹은 반대 성명서를 냈다. 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같다

나에게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리자는 뜻으로 읽힌다. 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 있겠나.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는 이미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 조갑제 대표가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 박효종 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보수 대신 좌파·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그러면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에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3세계에서는 보수는 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조차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종인 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을 찾기도 어렵고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안된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우파라고 말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이유가 무얼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관용법상의 문제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좌파는 입에 올리기에 두려운 말이었다. 좌파를 사용할 없다보니 우파만 외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중반경부터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함께 우파·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1980년대에는진보·보수 사용되지 않았음을 기억해내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 태어났지만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 하나일 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개념상의 위계가 흐트러졌다. 예를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는 지난 20 동안 우파의 대표적 사조였는데 이것은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이 보수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진보진영도 진보를 사용하는 불편해질 것이므로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 한다 보수를 빼자는 발언 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위원이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기 스스로를 ‘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 의원은 같은 날 트위터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의원 등도 비판에 가세했으며 자유총연맹은 반대 성명서를 냈다. 김 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것 같다. 

나에게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리자는 뜻으로 읽힌다. 김 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첫 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 수 있겠나.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는 이미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년 조갑제 대표가 “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년 박효종 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보수 대신 좌파·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그러면 왜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에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제3세계에서는 보수는 말 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 할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조차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종인 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을 찾기도 어렵고 이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몇 개 안된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우파라고 말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얼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관용법상의 문제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좌파는 입에 올리기에 두려운 말이었다. 좌파를 사용할 수 없다보니 우파만 외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중반경부터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함께 우파·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1980년대에는 ‘진보·보수’가 사용되지 않았음을 기억해내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 태어났지만 그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 중 하나x일 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개념상xXX




의 위계가 흐트러졌다. 예를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는 지난 20년 동안 우파의 대표적 사조였는데 이것은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이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이 보수라는 단어를 안 쓰게 되면 진보진영도 진보를 사용하는 데 불편해질 것이므로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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