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이 책에서 ‘무엇을’보다 ‘어떻게’에, ‘이론’보다 ‘사례’에 관심을 집중했다. 진보 보수의 중요성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구명하자고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참모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정도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 아닐까? 이론으로 들어가면 골치만 아프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는 이념논쟁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이념의 미망으로 빠져들 것을 극력 경계한다. 

 

그는 상식수준의 진보개념이라도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어떻게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깨우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는 진실을 깊이 탐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필요한 한줄의 진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사회운동가가 되려고 한 것이다. 이와 비견되는 예로 강준만의 경우를 들수 있다. 그는 몇해전까지 무려 열권 가까운 책을 통해서 오직 한가지 말을 했었다. 그것은 지역주의와의 싸움이었다. 진실은 한줄이지만 그 한줄을 실현하기 위해 열권의 책을 썼던 것이다. 노무현도 이런 염원을 표현했다.

  

하여간에 그런 것을 국민들에게 한번 전달해 보고 싶다는 것이죠. 백마디 이론이 있지만, 이론은 이 말도 맞는 것같고 저말도 맞는 것같고, 연구결과를 내놓으면 이런 결과도 나오고 저런 결과도 나오는데, 그건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기때문일 겁니다. 움직일수 없는 사실은 같은 기준에 의해서 정리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168쪽)

  

노무현이 얼마나 사례를 중시했는가는 5차에 걸친 기획 메모중에서 늘 진보의 나라 보수의 나라가 첫 번째로 올라가 있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정작 그가 중요시했던 진보 보수의 개념정의에 대한 것은 뒤로 밀려나 있다. 그는 진보 보수를 말하기 위해서 그 사례로 진보의 나라 보수의 나라를 거론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사례를 앞에 놓고 주장은 뒤로 둘려서 읽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일까. 그런데 이해가 될 것같기도 하다. 그는 진보 보수 개념정의 편이 앞에 나와서 이 책이 이론서로 비칠까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가 이론을 얼마나 경계하고 사례를 중시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책으로서의 유기적 통일성을 위해서는 편집자 재량으로 뒤에 배치돼있던 진보 보수의 개념규정을 앞으로 끌어왔어야 했다. 이 책의 편집자는 국가의 역할만을 앞으로 가져왔을 뿐이다. 수정판을 발행한다면 진보 보수 개념정의편을 앞으로 끌어와서 국가의 역할 뒤에 붙여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은 몇가지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국가의 역할은 성장과 분배등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경제성장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분배의 비율은 잘 알지 못한다. 이것은 국가예산에 대한 복지예산으로 수치화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20 30 40 이런 숫자를 못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국민들의 의식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나온다. 

  

내가 여기 생가마당에서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20프로 국가, 30프로 국가, 40프로 국가, 50프로 국가 얘기를 하거든요. 이게 이해하기 쉬운 모양입니다. GDP에서 국가 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20프로 국가, 30프로 국가.... 이렇게 분류를 하는데 60퍼센트대까지 있어요. 그런데 그나라들을 줄세우면 그대로 국민들의 삶과 복지가 드러납니다. 아마 복지 수준이나 이것이 나란히 갈겁니다.(168쪽)

  

우리나라는 28%이므로 20프로 국가군에 속한다. 미국은 40프로 국가군에 속하는 것을 보면 국가의 역할이 매우 적음을 알수 있다. 이외에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등은 어떤가? 이것을 숙제로 남겼다. 

  

그는 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공산주의 진보 보수가 뭐냐? 이런 머리 아픈 것들을 중학교 졸업한, 법정의무교육을 이수한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뭐있을까? 이런 고민 끝에 그는 이런 이야기를 던진다. 

  

공산주의 혁명이론이 뭐냐면 버스 딱 세워 놓고 몽둥이 들고 올라가서 ‘차주 내려와’ 하면서 패고(일동 웃음) ‘기사 내려’ 하면서 패고, 확 끌어내 버리고, ‘우리가 몰고 가자’ 하고 빵 가버리는 거거든요.(웃음) 진보라는 건 그게 아니고 ‘차가 좀 비좁나? 그래도 뭐 다 같이 가야 되는 사람들인데 타야 될 거 아이가? 우리도 좀 타자’ 근데 못 타게 하니까 ‘왜 못 타 인마, 김해사람은 손님 아니야?’ 이러면서 올라타거든요. … 그럼 이제 진보의 가치는 뭐냐? 연대, 함께 살자.(213쪽)

  

그가 수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유러피언 드림과 미래를 말하다라는 두권의 책은 그가 어떤 책을 지향했던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 문장도 유려하고 얘기를 잘 풀어놨어요. 그런데 고민은 너무 잘해놔서 그냥 베꼈으면 제일 좋겠다.(일동 웃음) 미국에서 보수의 시대와 진보의 시대를 대비해 주는 것, 유럽과 미국을 대비하는 것, 그건 그것대로 대비하기로 하고요. (168쪽)

  

진보의 미래 1권에는 유러피언 드림 미래를 말하다등 두권에서 직접 인용한 대목은 볼 수 없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드림에서 대통령이 지목했을 법한 대목을 찾아봤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퇴조를 즉 보수의 나라의 한계를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이 아메리칸 데이드림(백일몽)이 되어가고 있단다. 의료보험제도의 미비로 인해 저소득층은 몸이 아파도 의료진료를 받지 못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왜 그렇게 망가졌을까. 리프킨은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루하지 않은 글이므로 길게 인용한다.

  

사회비평가들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라 “아메리칸 백일몽 American daydream”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기독교 신앙과 미래를 위한 근면과 희생에 대한 믿음이 합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 요소들을 대체하고 있는 합법적 도박, TV 리얼리키 쇼 등은 공상 및 환상을 바탕으로 한다. 사회 비평가들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비만해지고 게을러져 허구헌 날 가만히 앉아 성공을 바라면서도 스스로 무엇인가 이뤄내는 데 필요한 개인적 헌신 등 “정당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 그들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로부터 돈으로 살수 있는 모든 쾌락과 경험을 어릴 적부터 받아 버릇없이 자란 세대다. 즉시 만족에 길든 이런 젊은이들은 진정한 아메리카 드림을 살려나가는데 필요한 개인적 헌신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요즘 미국 중산층 젊은이들에게 신앙, 자제, 근면, 자립, 희생이라는 개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감정 및 정신상태를 묘사하는 더 정확한 표현이 ‘권태 ennui'인 미국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청소년들조차 “거기도 가봤고 그것도 해봤다”는 말을 곧잘 한다. 이란 청소년들이 성인기에 접어들면 못가본 곳도 없고 안배본 것도 없으며 못본 것도 없고 못가진 것도 없어진다. 그들에겐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거의 없다. 그들이 꿈꿀 기회를 기회를 갖기도 전에 꿈이 이뤄진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젊은이들에게 삶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동기 유발” 그 자체다. 그러니 술, 마약, 도박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것이라면 순간적 쾌락만이 권태를 물리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사회를 관찰해온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아메리칸 드림이 퇴색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 그들의 자만심을 부풀려놓았고, 그에 따라 젊은이들이 자신에게는 많은 “특성”이 있으며 성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계 인사는 “요즘 학생들은 강의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A학점을 얻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46-48쪽)

  

어떻게 기회의 땅인 미국이 소득 불균형과 빈곤측면에서 선진국 가운데서 꼴찌일 뿐 아니라 유럽국가들보다 한참 아래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에서 찾을수 있을지 모른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비즈니스와 상업활동에 대해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태도를 취한다. 교육받을 기회를 주고, 자유시장이 지배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거기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의욕있고 재능있는 사람은 자력으로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욕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성공할수 없지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미국은 언제나 ‘기회 균등’의 나라였지 ‘결과 균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격언처럼 “가라앉지 않으려면 헤엄을 쳐야 한다.” (Sink or swim)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 개념은 개척정신의 핵심으로 미국의 국가적 의식에 확고히 뿌리박고 있다. 즉각적 성공과 명성을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엉터리 꿈으로 변질시킨 미국인들조차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고 믿는다. 미국이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회의 땅이라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확신은 아무리 그에 반하는 세계적인 통계수치가 나오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59-60쪽)

  

제레미 리프킨의 글은 사회과학적인 내용을 매우 흥미있게 읽도록 해준다. 리영희의 명쾌한 글을 읽는 것같다. 대통령의 뜻은 단지 사례나 데이터 자료만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리프킨처럼 그것을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하자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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