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도 중도, 이명박도 중도... 중도는 무엇인가?>


 

<목차>
 
1. 문제제기 -이명박도 노무현도 중도? 

2. 중도란 무엇인가  
2-1. 좌와 우가 있을 뿐 중도는 없다
2-2. 중도는 없지만 중도의 영역은 있다
2-3. 이념의 여섯가지 구분
2-4. 중도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3. 중도의 적들  
3-1. 중도의 적들 1 :중도는 왜 인기가 없나
(3-1-1. 보수시대 진보정권의 실패 -조스펭 블레어 노무현)
3-2. 중도의 적들 2 :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3-3. 중도의 적들 3 : 좌우 극단화 조장하는 언어의 속성 
3-4. 중도의 적들 4 : 색깔론과 빨갱이 적출이 횡행하는사회 -6.25의 유산
3-5. 중도의 적들 5 : 주체의 강화 -설경구와 한석규를 &#51479;아하는 이유
3-6. 중도의 적들 6 : 중도의 구조적 한계

4. 중도의 친구들 : 중도의 속성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들

5. 중도의 현장
5-1. 송호근의 ‘중심의 이동’ 
5-2. 김진석의 ‘우충좌돌’ 중도론
5-3. 유시민의 “조금좌파”
5-4.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
5-5. 임현진 윤성이 이종재의 경우 

(6. 맺으면서 -노무현의 중도와 이명박의 중도)

 

 

 

1. 문제제기 -이명박도 노무현도 중도?

 

진보 보수를 정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도에 대한 규정이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도는 어떤 것인가. 여기에도 많은 논란이 예고돼 있다.

 

지난 7월29일자 경향신문에 경북대 이정우교수의 기고가 소개됐다. 조봉암과 노무현을 비교한 이 칼럼은 오랜만에 보는 품격있는 글이었다. 7월 31일은 조봉암 사거 50년이 되는 날이어서 시의성도 있었다.

 

그런데 이교수의 글 제목 “중도파의 비극, 조봉암과 노무현”에서 드러나듯 그들을 중도파로 규정했다. “극좌 극우가 아닌 중도의 길을 걷는 양심적 정치세력을 국민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구절도 보인다.

 

이 교수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고 진보주의 연구 프로젝트의 좌장격인 분이다. 그의 발언에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6월부터 중도강화론을 내세우며 떡볶이 집을 방문하는등 친서민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는데 우파논객들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비판했고 좌파에서는 우파의 중도성향 표를 얻기위한 기만전술로 보기도 했다. 

 

중도 강화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대통령은 이미 대선기간중에 ‘중도실용’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작가 황석영도 이대통령은 원래 중도인데 우파에게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이명박도 중도이고 노무현도 중도인가? 도대체 중도는 무엇인가? 전현직 두 대통령의 중도는 어떻게 다른가. 

 

------

위의 글은 시작하는 글이고 이어지는 본문을 지금 쓰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올려서 읽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예고편격인 글을 먼저 올려봤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전에 먼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진보주의 연구에 있어서 왜 중도가 중요시되어야 하는가의 근거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국민 열명중 네명이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달전인 6월7일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이념성향을 '중도'로 규정한 응답자는 38.9%이었고 '진보'와 '보수'라는 대답은 각각 28.0%, 27.2%였습니다. 며칠전의 다른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 국민의 43.4%가 중도, 24.9%가 보수, 31.7%가 진보였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서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들을 찾아봤더니 중도에 대한 의미있는 글을 남긴 전문가들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중도는 있다” “중도는 없다”는 양쪽입니다. 

 

“중도는 있다”는 쪽은 이념 양극화의 폐해, 좌우갈등의 격화를 치유할 방법으로 중도의 기능에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김진석(인하대 철학)의 우충좌돌론이 대표적이고, 송호근(서울대 사회학)의 중심의 이동이 저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임현진(서울대) 윤성이(경희대 정치외교학)등의 칼럼도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최근에 “중도가 나서서 중심을 잡자”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했고 편집국장 이종재는 "한국일보는 '적극적 중도'로 간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연구거리입니다.

 

“중도는 없다” 쪽은 정치의 장에서는 끊임없는 선택이 있을뿐 중간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대표적인 분은 “보수 진보가 있을뿐 중도는 없다”는 글을 쓴 송복(연세대 사회학)이며 “좌파와 우파”라는 명저의 저자이자 제가 사숙해온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도 이쪽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0%나 된다는 여론조사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6.25 때의 이야기인데요. 지리산 자락의 마을에서 밤이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었죠. 일군의 전사들이 총이나 죽창같은 것을 들고 마을을 습격합니다. 그들은 자고 있는 주민을 깨워서 손전등을 비추면서 국방군편인가 산사람 편인가, 남인가 북인가, 좌인가 우인가를 묻습니다. 이때 대답이 어긋나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역사속에서 이같은 처참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뇌상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라는 의식은 우리 민족의 몸에 박혀 DNA가 된 것이 아닐까요?

[출처] 중도에 대하여 1|작성자 oniv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