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수 대통령' 박근혜가 문을 열게 되면

[김제완의 '좌우간에']<22> 기울어진 축구장, 후반전이 시작됐다



1. 한국사회 현단계의 모습

외국에 나가면 흔히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해외동포들은 요즘 조국의 발전을 보면서 대견해 한다. 그런데 국내에 와서 보면 다들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으로 대선에 참여하는 재외국민들이 한 표를 올바로 행사하려면 국내사정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지난 3년간의 한국정치사회 개론을 작성했다.

양극으로 치닫는 사회 

한국사회는 각종지표를 보면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 1인당 GDP는 2만3천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무역규모는 수출 수입액을 합산한 것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국가는 전세계에서 9개국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한국 핸드폰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한국상품이 지난해 131개에 이른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얻어 5위에 올랐고 LPGA 10위권에 한국여자 선수들이 절반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가 절정이다. 사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2위에 올랐다. 국내 어디를 가도 도로 건물들이 번듯하고 터널 교량 등은 최신공법으로 건축된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한 최초의 시대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시기라 불린다. 어떤 인류학자는 200년마다 국운 상승기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400년 전의 세종대왕 시기, 200년 전의 영정조 시기에 이어 지금이 그때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너무 짙다. OECD 나라 중에 1등하는 것을 모아보았다. 자살률, 노인빈곤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대학등록금 등이 1등이고 출산율,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GDP 대비 공공지출 등은 뒤에서 1등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ILO 가입국 중 1위이다. 복지수준은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자영업자 수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4위이고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영국과 1, 2위 다투고 있다.

이중에 가계부채는 올해 3분기 937조5000억 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역규모 1조 달러와 같은 수준이며 경제활동인구 1명당 4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이어져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OECD 통계는 영국의 장하준 교수가 지난 9월 국내 강연에서 정리해준 것이다. 우리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양극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통계가 웅변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해외동포 중에는 양극화라는 용어가 이해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판잣집도 없어졌고 거리에서 거지를 보기도 어렵다. 전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므로 부잣집이나 극빈층의 집이나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별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단단히 뿔이 난 국민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는 성장을 위해 일로 매진해왔다. 오른쪽으로만 치달았다. 시대가 오른쪽으로 가자고 했고 국민들도 동의한 것이다. 이때 흔히 듣던 말이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이었다. 파이를 키우고 그 다음에 나누어 먹자고 하는 말에 다수 국민이 수긍했다. 너무 배고프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보리고개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를 보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이 사회에서 나는 왜 여전히 생활이 고달프고 행복하지 못한가. 왜 여전히 기득권층의 부패는 계속되고 사회정의는 실현되지 않는가. 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내용을 보면 직장인이 읽기 어려운 철학책인데 이처럼 팔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제목이 주는 효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2만3천 달러를 넘었다. 파이는 이만하면 충분히 커졌다. 그런데 파이가 커지면 나눠먹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위 낙수효과라는 트리클 다운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랫목이 따듯해지는데도 윗목에는 온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떡고물도 없다. 재벌기업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곳간에 그득 담아두고 있는데 서민들은 빚잔치를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재벌 개혁을 겨냥한 경제민주화가 나오게 됐다.

경제성장을 1% 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자는 56만 명인데 일자리는 30만 개이고 그중에서 취업자가 만족하는 일자리는 3만 개에 불과하다. 매년 대졸 실업자가 20만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구조이다. 얼마 전 TV에 나온 삼성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능력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해외경험도 갖추고 있어서 글로벌 마인드나 영어실력 등이 우수하다. 앞 세대보다 능력이 뛰어난데도 취업을 못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잘 나가는데 왜 국민들은 불행한가.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보면 대단히 발전된 나라인데 들어와서 보면 국민들이 불행하다고 말해 놀란다. 왜 그런가. 엄살인가. 전보다는 잘 살게 됐는데도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성장 일변도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만 발전하다보니 생긴 왜곡현상이다. 오랫동안 오른쪽으로만 끌어당기니 몸이 뒤틀리고 있다. 이제는 왼쪽으로도 끌어주어야 몸이 바로 잡히고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다. 일본을 눈여겨봐야 한다. 50년대 이래 보수우파 정당의 장기집권이 일본을 지금의 불균형상태에 빠뜨렸다. 우리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불균형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과 교육이다. 지난 80년대에는 주택공급률이 가구 수에 비해 현저히 미달했다. 남의 집에 방한칸 얻어 사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경기에 풀무질을 했고 여기에 돈이 몰렸다. 그 결과 건설경기가 살아났고 가장 짧은 시기에 다량의 공동주택이 공급됐다. 2002년에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문제는 빛나는 성장의 후과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파리와 뉴욕의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외식비, 택시비는 싼데 비해 주거비는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새로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30대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 전세값도 오르고 있어 주거권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문제도 부동산과 구조가 똑같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이들이 고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길러낸 우수한 인재들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한쪽으로만 치닫다 보니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이고 자살율도 가장 높다. 이민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첫 번째 이유가 아이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배출된 인력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 경쟁력 위주로 만들어낸 청년들이 정작 협력을 필요로 하는 팀제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있으면 이제는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주위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2. 한국정치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흔히 한국의 선거에서 진보 보수의 불균형을 기울어진 축구장에 비유한다. 진보가 한번 이기려면 천신만고 끝에 이기고 보수는 밥먹듯이 쉽게 이긴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집권할 때를 보자. 집권세력이 나라를 거덜낸 뒤에 치러진 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 2위 후보와 겨우 1.6%포인트인 39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져서 보수표가 분산됐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을 잡고서도 2위 후보와 2.3%포인트인 57만표 차이로 이겼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축구에서 후반전이 되면 선수의 위치가 바뀐다. 한국사회도 오랫동안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 것일까. 지난 몇 해 사이에 게임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듯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모순이 충분히 누적되면 비로소 큰 변화가 온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 징후가 처음 나타난 사건이 바로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렸다 

2009년 4월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난데없이 무상급식이 나타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진보진영과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보수진영의 대립이었다. 무상급식 전면도입은 알고 보면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이다. 좌파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부모의 수입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소득이 많은 사람이 급식비를 더 낸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북유럽 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왜 이슈로 떠오른 것일까. 당시 유권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것쯤은 국가가 해줄 수 있지 않나. 이런 요구에조차 토를 달고 되니 안 되니 하는 보수정당에 대해서 화가 난다. 국가보안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 결과 무상급식을 내세운 진보성향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 뒤로 무상급식이 이슈가 된 투표에서 여당은 판판이 패했다. 

무상급식은 복지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수준은 OECD에서 꼴찌에서 두번째이다. 이런 불균형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갑자기 복지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탄식을 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을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니 갑자기 복지를 말하는 이 시대가 너무나 놀랍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복지문제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좌파진영의 기획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마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왔다는 말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린 것이다.

진보시대로 한걸음씩 진군하다 

새로운 움직임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년 후인 2010년 6월의 지방선거이다. 여당은 이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보수표를 결집시키려는 등 선거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30대 유권자들이 오히려 화를 냈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들이 투표장에 줄을 섰다. 이들은 오히려 왜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했는가 따졌다. 2011년 북한의 1인당 GDP는 720달러로 남한의 2만 3,749달러에 비해 3%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에 비해서 국력이 수십배에 이르는데 왜 형님노릇 제대로 못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고교와 대학생 시기를 진보정권 치하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은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이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악수를 두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반대카드를 꺼내들고 도박을 했다. 오세훈은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에 서있었는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신호로만 보였다. 그래서 그 변화에 저항했다. 그는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였다. 전면적 실시와 단계적 실시중 하나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8월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25.7%였다.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됐다. 오세훈은 이틀 후 시장직을 사퇴했다.

오세훈의 주장은 무상급식 반대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으로 하위 50%계층부터 차차 늘려나가자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 안이 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화가 나있었다. 석달 후인 10월26일 실시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고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당선됐다. 진보시대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면 올해 4월 총선에서 왜 민주당이 패한 것일까. 국민들은 진보시대로 가라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여론조사를 하면 매번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호에 취한 민주당은 개혁을 외면했다. 그 결과 당명까지 바꾸며 절치부심해온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역전승했다. 민주당의 무능이 민심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4월 총선은 야당이 패했지만 민심은 데이터로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의석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지만 득표수의 총합은 야당들이 얻은 표가 더 많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석수는 152석대 127석이었지만 여권정당 득표율과 야권정당 득표율은 48.2%대 48.5%였다. 4월총선이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대통령 선거였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이번 대선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중도 부동표를 안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꼽힐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퇴한 이유를 놓고 언론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처럼 단일화협상 중에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분노해서 마음이 돌아섰을까. 양자간의 TV토론 중에 안철수의 대북정책이 MB정권과 같다고 말해서 상처를 받았을까. 유언비어 수준의 발언도 나왔다. 안철수 문재인의 비공개회담에서 서로 눈싸움하며 몇십분간 말이 끊기기도 하며 감정대립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이유로 사퇴했다고 말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안철수가 사퇴 결심을 한 이유를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단일화협상이 시작된 11월중순부터 사퇴 발표를 한 23일까지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 뿐 아니라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3위가 바뀌어 문재인에게 밀려났다. 이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이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좌석을 3천개 준비했지만 학생들이 5백명만 모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한 선택을 한 국민여론이 그를 하차시킨 것이다.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선택한 시대정신이 그를 물러나게 했다고 봐야 한다. 

투표율 70%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선거를 보면 김대중이 당선될 때는 80.7% 노무현이 당선될 때는 70.8%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에서는 63%였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대선에서 70%를 넘기면 진보후보가 유리하고 넘지 않으면 보수후보가 유리하다. 그래서 18대 대선의 승부처는 투표율이 70%를 넘길 것인가 여부라는 말이 나온다.

박빙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선거의 긴장감을 감안하면 투표율 70%는 넘을 것 같다. 만일 70% 투표율을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은 54.3%였으므로 약 15%의 유권자가 새로 참여하게 된다. 15%이면 총유권자 4000만 명 중 600만 명이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 투표에 불참했던 수도권 유권자와 2030 유권자가 다수 포함돼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구도의 측면에서 보면 야당 필승국면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를 꺼려한다. 보수 진보언론이 각각 자기 진영의 패배주의나 자만심을 경계하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선거 막바지에는 양 진영이 화력을 총동원하므로 혼전양상으로 보인다. 선거판을 정확히 읽으려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어 있는 큰 구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구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선거의 특징은 예측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선진국과 달리 한국 선거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선거를 잘 치루는 쪽이 또는 운이 따르는 쪽에 승리가 돌아간다. 

▲ 재향군인회 창설 6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3. 60년만에 찾아온 진보의 시대 

역사는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다수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가치이다. 보수가 집권해서 성과를 거두다가도 그 한계에 이르면 진보가 요구된다. 진보정권도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면 보수로 바뀐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보수 이념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으나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수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보수세력도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새누리당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서 문재인의 공약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도 진보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시기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기사 제목이 현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침내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열어갈 진보의 시대를 어떤 세력에게 맡길 것인가이다. 

노회찬의원은 최근 필자와 같은 인식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진보의 시대를 열어갈 시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시대의 개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87년 상황을 예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한국사회는 오랜 군사독재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민주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87년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했다. 그런데 군인출신 노태우가 당선돼 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구인 전두환을 유배보내야 했고 북한과 공산권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해야했다.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런 진보적인 정책을 군사반란의 주모자인 노태우가 해냈다. 그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같은 자기배반적인 일을 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자기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전두환과 비교된다. 

그런데 노태우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괴로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 등 보수정책을 채택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고 이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을 잃게 됐다. 노무현이 지금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 역사의 순풍을 맞았을 테고 개인사적으로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시대를 여는 일을 보수에게 맡길 것인가 

새누리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해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민주화시대를 여는 일을 수행했던 군인출신 노태우와 같은 위상에 놓이게 된다. 노무현이 억지춘향 격으로 보수정책을 채용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연초에 우리는 이미 예고편을 보았다. 보수정당이 당 강령에 있는 보수라는 말을 삭제하려고 시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뒤에 계속된 좌클릭 행보로 보수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보수가 좌클릭하고 강령을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로 진보시대를 여는 대통령의 자리에 보수인사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노태우와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그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은 피곤해진다.

정치인들은 흔히 집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국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불려나와 복무할 뿐이다. 지금 국민은 진보를 호출하고 있다. 22만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한국정치사회를 이해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3)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김제완의 '좌우간에'] 고비용 재외선거의 해법은 우편투표



2009년 1월 한파가 몰아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작은 방은 열기로 가득 찼다. 외교통상통일위원장실 옆 소회의실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렸다. 1월15일부터 일주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열린 회의에서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관련조항이 규정된 공직선거법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음달인 2월5일 재외국민투표 관련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됨에 따라 230만에 이르는 국민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72년 유신과 함께 해외부재자투표가 중단된 이래 37년 만에 주권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 통과된 법은 여러 가지 미비점 때문에 반쪽짜리 법이라는 평을 들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투표방법이 어려워 여우 집에 초대받은 두루미의 우화에 비유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우편투표였다. 우편투표는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실시방법이 간편해서 재외국민은 누구나 원하고 있으며 투표 참여율도 크게 늘릴 수 있다. 투표관리 비용도 가장 적게 먹힌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련 부처는 국가의 미래나 재외국민의 편의가 아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정치권의 목표는 재외선거 무력화 

먼저 정치권의 입장을 살펴보자. 재외국민이 보수적일 거라고 보았던 한나라당이 재외선거에 적극적이었고 민주당은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우편투표와 선거참여자의 범위 등 몇가지 쟁점을 두고 여러해 동안 대립해왔다. 그런데 줄곧 우편투표 추진을 공언했던 한나라당이 정개특위가 시작되고나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회의석상에서는 고성도 삿대질도 없었다. 여야 간사는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었다. 권 의원은 육사 장교에서 특채된 유신 사무관 출신이고 강 의원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출신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예상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쟁점사항에 대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이 타협을 해나갔다.

오랫동안 국회에서 서로 견원지간으로 대립해온 그들이 막판에 쉽사리 합의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세 차례의 특위 회의를 지켜봤던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처음 실시하는 선거에서 새로이 진입하는 230만의 유권자들이 어디로 튈 것인가. 재외국민의 성향이 보수적일 것이라고 예상은 됐지만 투표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4.11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 표가 더 많이 나왔다. 이러한 불가측성을 내다보고 미리 두려움을 느꼈던 양당은 재외선거인들의 참여를 최소한으로 하자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지난 15대 대선은 39만 표차, 16대 대선은 57만 표 차로 결정났다. 그런데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유권자의 숫자를 보면 경상북도만한 선거구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야 정당은 재외유권자가 선거에서 캐스팅보터가 되지 않을 만큼 무력화하기 위해 그 방법으로 우편투표 도입을 배제키로 했다.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에 대한 정치권의 배신행위이고 공작정치에 다름없다. 

법 통과직후 재외선거법이 "홍준표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어이없게 했던 홍준표 의원은 미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우편투표 반대를 공언하고 다녔다. 선거의 3원칙중 하나인 비밀투표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외교부와 중앙선관위의 고위 관리들이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들에겐 의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것보다 소속 부처의 입장을 전달하고 관철하는 일이 더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면 외교부와 선관위의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외교부는 우편투표를 주장했지만 

외교부는 업무적으로 재외국민을 관할하고 있어 재외선거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역선관위 위원장을 "공관장이 맡는다"는 조문을 "맡을 수 있다"로 바꾸기 위해서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 한 줄의 법조문의 차이가 현장에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나온 재외동포대사는 이때 적극적으로 우편투표를 주장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영국의 사례를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경영하느라 일찍이 자국민이 해외에 진출했고 재외선거에 대한 노하우가 많았다. 프랑스는 우편투표를 실시하다가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70년대에 중단했었다. 영국은 이런 부정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ABCD중 하나에 체크를 한 뒤에 그 문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서 투표할 때 다시 그 문자에 체크하도록 했다. 개표시에 두 가지 문자가 맞는지 대조하여 우편투표의 최대 약점인 대리투표 등 부정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이 그만 하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외교부 대사는 끈질기게 우편투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정개특위 위원들의 선의는 그의 말을 들어준 것까지였다. 이 시점에는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우편투표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외교부가 나서서 우편투표 제도 도입을 주장한 것은 재외국민을 어여삐 여겨서가 아니었다. 재외선거가 실시되면 각 공관에 설치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공관장이 맡고 외교관들이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선거업무에 문외한인 그들은 이 업무를 부담스러워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우편투표는 해외유권자와 국내 선관위가 직거래하는 방식이어서 외교부는 손 안대고 코풀 수 있게 된다. 

최대의 경사를 맞은 선관위 

중앙선관위는 사업시행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받는 일이 목표였다. 차관급인 사무차장이 나서서 자리를 지켰으며 회의장 밖에는 국과장급 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선관위는 창립 이래 최대의 경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업무특성상 해외 근무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선관위 직원들에게 해외주재관 50여개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사적체도 일거에 해결될 것이다. 재외선거 문제의 야전지휘관 격이었던 선거국장은 국회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의원들 뿐 아니라 동포단체 대표들을 만나며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그는 선거법 통과 뒤에 선관위 역사상 최대의 경사를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의 길을 달렸다. 

선관위의 입장은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인 이 회의에서 추가투표소 설치에 올인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재외국민은 50개주에 걸쳐 살고 있지만 투표소는 공관이 있는 10개 도시에만 설치돼 있다. 비행기 타고 와서 투표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주요도시에 추가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해외파견 직원 배정과 함께 추가예산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이메일을 통한 유권자등록이 허용됐을 뿐 추가투표소는 통과되지 않았다.

우편투표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은 이중적이었다. 우편투표가 세계적인 대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해외업무가 적어지므로 내부적으로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속셈을 발설하지는 못했다. 우편투표를 하게 되면 유권자들 본인이 적지 않은 국제우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좋아하겠느냐는 초치는 말이 흘러나왔다. 

2009년 1월의 정개특위 법안심사소위는 이처럼 정치권과 유관 부처들간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하나라도 더 유리한 법안을 얻어내기 위해 각부처가 기를 쓰고 매달렸다.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성맞게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던 미주한인 단체장들은 이때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소위에서는 왜 재외국민 대표들을 부르지 않은 것일까. 여야가 이미 결론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 큰 당사자가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서 유신 사무관 출신의 노회한 여당 간사와 삼민투위원장 출신 야당 간사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무사히 만들어낸 것이다. 

법이 통과된 직후 필자는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사후약방문이었다. 우편투표, 추가투표소, 선상투표, 재외선거에 국회의원 지역구투표, 국민투표 등 다섯가지가 법안에 빠진 것을 지적했다. 이 당시 재외선거를 주제로 KBS 라디오 열린토론이 방송됐다. 권경석 의원과 강기정 의원 대학교수 한사람과 함께 필자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의 자격으로 출연했다. 이날 토론에서 여야 의원은 한목소리로 통과된 법을 옹호하고 나섰다. 쟁점 법안이 통과되면 야당이 미진한 사항에 아쉬움을 표하는 전례와 사뭇 달랐다. 야당을 영어로 하면 오포지션 파티 즉 반대당이다. 반대를 하지 않는 야당에 맞서 반대토론을 해야 하는 구도였다. 

재외선거를 둘러싸고 정부 부처들과 정치권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동안 재외국민의 주권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이 됐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이다. 

반쪽짜리 법의 결과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 

10월 20일 재외국민 유권자등록을 마감한 결과, 전체 재외 유권자 223만 3695명 가운데 22만 3557명이 참여해 10.01%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총선 때의 등록률 5.57%보다 두배가량 늘었다지만 여전히 저조한 수치다. 언론은 사설과 기사 칼럼 등을 동원해서 낭비성 투표라고 질타했다. 연합뉴스는 10월21일자 기사에서 재외선거 등록율이 낮아서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됐다고 썼다. 서울신문 10월23일자 사설은 "고비용 재외국민선거 이대론 안 된다"는 제목을 붙였다. 동아일보는 "재외국민선거,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박명호 동국대 교수의 기고를 게재했다. 

서울신문 사설은 지난 총선 때의 전례를 볼 때 이번 대선에서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10만 명을 웃도는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대선이 초박빙 승부로 가더라도 변수가 될 수 없는 숫자이다. 재외유권자 표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이번 선거에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자는 여야 정치권의 의도는 성공했다. 

선관위는 파리 날리는 해외투표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예산을 챙겼다. 해외 각지에 파견된 재외선거관 55명의 인건비를 포함해 대선 관리비용으로 책정된 예산은 265억원이다. 투표자 수를 기준으로 내국인 1표 행사에 드는 비용이 1만원가량인 반면 재외국민 1표에 드는 비용은 어림잡아 30만원 남짓된다. 

재외선거를 둘러싼 게임에서 정치권도 승리했고 선관위도 승리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냈다. 패한 쪽은 재외국민이다. 재외국민들은 국내동포들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진다. 면목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세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권리만 주장한다는 지탄을 받아왔다. 왜 이런 법이 만들어진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어 답답해한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 세 명의 대선 후보들이 재외국민을 위한 공약을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각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복수국적을 위한 국적법 개정, 주민등록증 또는 재외국민증 발급, 재외국민보호법 제정 등 현안문제들이 망라돼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은 재외선거법에 대한 이들 후보들의 입장이다. 정치권이 재외국민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바로 공직선거법 개정인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것이 된다. 선거법 재개정이 공약의 첫 번째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재외국민 공약 여섯 개중에는 선거법 개정이 보이지도 않는다. 박근혜 캠프 인사들이 재외국민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재외국민 공약 중 하나로 "실질적 참정권 행사를 위한 투표 인프라 개선"을 명시했다. 우편투표가 키워드인데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우편 또는 인터넷 등록 및 투표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개선"을 약속했다. 이것이 정답이다. 과거에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죄업을 스스로 씻어내기를 바란다.  

(2) 정책 선거하려면 상가권리금 문제에 머리를 싸매라

[김제완의 '좌우간에']<19> '한상대회' 참가 재외동포들 각국의 사례 증언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소모적이고 무익한 정쟁이 아니라 '정책 선거하자', '서민 위한 정책으로 심판받자'고 말한다. 안철수 후보는 '민생법률'을 말한다. 이런 말이 구두선(빈말)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선을 두 달 앞둔 지금 각 캠프에 모인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 도전해볼 만한 과제가 있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상가 권리금 문제이다.

상가 권리금은 현재 상법, 민법 등 어느 법에도 규정이 없다. 법의 바깥에 놓여 있는 법외 제도이며 법치의 실종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규모도 어림잡기 어려울 정도로 크지만, 지하 경제로 편입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자영업이 늘고 있어 서민생활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정작 정치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추적하다 보니 국토해양부의 주택정책 담당 고위관리의 잘못된 판단과 만나게 된다. 더구나 그 문제 발언을 언론이 검증 차단하기는커녕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이런 혼선 속에서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국토부 관리의 발언을 찾아보았다. 

국토부 주택정책관, 권리금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 

2009년 2월 10일 용산참사 직후 열린 정부부처 합동 기자회견에서 국토해양부 도태호 주택정책관이 '권리금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관행'이라고 말했다. 예외적이고 특수한 관행이므로 법제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법이란 보편성 일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것은 권리금 문제를 팔짱 끼고 바라보고 있는 정부의 입장이 타당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주택정책관의 한마디가 권리금 문제 논의의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태호 주택정책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리금은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가 없다.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제도로 사실 권리금은 세입자 간, 임차인에서 임차인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임대인이 직접 받는 경우가 거의 드물고 이를 객관화할 수 없다. 경기변동의 요인에 따라서 권리금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경우가 있고 여러 업종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공식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다만 감정평가를 할 경우 매출액, 영업이익 등을 현실적으로 평가해 감정평가 참고사항으로 반영하는 정도로만 하고, 공식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을 계획이다." (2009년 2월 10일 자 <뉴시스> "정부 '재개발 권리금 보상, 인정하지 않을 것'")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국가가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라는 발언은 명백한 거짓이다. 필자가 취재한 재외동포 상인들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권리금은 본래 세입자끼리 즉 임차인 간에 주고받는 돈이며 원칙적으로 임대자가 개입하면 안 된다. 권리금액을 객관화하기 어렵다지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된다. 당연히 경기변동에 따라서 있다가도 없어진다. 이것은 권리금의 속성인데도 주택정책관은 그것 때문에 권리금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고위 공직자의 잘못된 발언이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는 곧바로 나타난다. 도정책관의 발언 이후 '권리금은 한국에만 있는 관행'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나가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권리금이란 통상 점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과 영업방식을 이어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금전을 말한다. 권리금 수수(收受)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관행이며, 민법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 (토지공법연구 2009년 11월, 허강무 "재개발사업 권리금 보상의 공법적 검토")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을 안 해주는 돈이고 한국에서만 있는 제도 아닌 제도라고 하네요. 정부나 법원은 이런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으니 상가세입자들만 죽으라는 소리죠." (<삶> 2011년 7월 19일 자 '세상에 대한 쓴소리' 중 "명동 재개발 문제의 핵심은 권리금")

"권리금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관습이라고 한다. 권리금이라는 관습이 없는 외국에서는 점포나 비즈니스 권리를 거래할 때 매도자와 매수자를 대신해 변호사가 나서서 해당 점포의 납세실적을 바탕으로 점포의 가치와 거래 액수를 산정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2월 9일 자,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토지주택센터장 "상가 세입자 권리금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반 네티즌뿐 아니라 토지관련법 전문가, 주택문제 전문가들조차 권리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행 관습이라고 말한다. 이들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 출처는 모두 도정책관의 발언으로 추정된다. 2009년 2월에 나온 도정책관의 말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 권위있는 단정적인 진술은 그의 발언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상대회' 참가 재외동포들의 증언…"권리금 어느 나라에도 다 있다"

올해 총선부터 재외국민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재외국민 유권자는 230만 명인데 그중에 절반 정도가 영주권자이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에 이민 가서 자영업에 종사하므로 상가 권리금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필자는 지난 16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참가자들을 취재해서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정보를 모았다. 

▲ 지난 18일 폐막된 세계한상대회가 내년에는 광주에서 개최된다. ⓒ뉴시스 


캐나다에서는 권리금을 '굿윌(good will)'이라는 말로 불린다. 선의, 선의의 돈 또는 선의로 인정해주는 돈이란 뜻을 가진 용어이다. 굿윌은 좁은 의미의 권리금이다. 재고비와 시설비까지 더해져 통상적 의미의 권리금이 된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운계약서 관행도 있다. 재계약시 주거용 주택의 경우 임대료 인상 상한선 있으나 상가는 없다. 계약기간은 3년씩 두 번 모두 6년이다. 임대차 보호법 등에 따라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고 관행으로 이뤄진다. 그로서리(식품점)의 경우 2년 치 매출이 권리금 산정 기준이다. '한상대회'에 참가한 캐나다 한인상공실업인총연합회 안정호 씨의 증언이다. 

시카고에서 온 사업가는 미국에서는 상점을 거래할 때에 기업가치를 판단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납세실적과 함께 매출과 순이익 규모 그리고 브랜드 가치 등을 평가한다. 나라마다 권리금을 뜻하는 용어가 다른데 미국에서는 '키머니(key money)'라는 말로 불린다. 상점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받기 위한 돈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권리금을 열쇠라는 뜻의 '야베(llave)'라고 부른다. 키머니와 같은 뜻이다. 중남미 나라들에 다 있는 관행이다. 3년마다 주인에게 키머니를 납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법제화된 것이 아니고 관행이어서 부동산시장을 장악한 유태인들이 자의적으로 세입자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르헨티나 동포 출신으로 지금 서울에 거주하는 박채순 씨가 확인해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상점 권리금을 '퐁 드 꼬메르스(Fonds de commerce, 영업권)'라고 부른다. 일상생활 중에는 줄여서 '퐁'이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빠 드 뽀르트(pas de porte)'라는 별칭이다. 직역하면 "그 집 문앞 발걸음"이 된다. 세탁소를 예로 들어보자.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가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고 있다. 세탁물이 생겼을 때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그 집의 문앞으로 향한다. 권리금은 고객들의 무의식적 습관적 인지를 돈으로 계량한 것이다. 프랑스인들답게 이런 특성을 따서 문학적으로 이름지었다. 3년 단위로 세 번 연장 계약하며 세무서 발급 공증계약서 양식을 사용한다. 만일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집주인이 임차인을 내보낼 경우, 이 양식에 기재된 권리금을 보상한다. 식당의 경우 1년 매출액이 권리금 협상 시의 기준이 된다. 프랑스 사례는 파리에서 영주권을 소지하고 생활했던 필자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양도금이라는 뜻의 '전양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세무서에 신고 안 하고 세금 안 내도 처벌 대상은 아니다. 집주인과 계약 시에 계약서에 제3자에게 전양비 양도가 가능한지 여부를 명기한다. 통상적으로 변호사가 대행하므로 한국보다는 공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흑룡강신문> 청도 지사장 박영만 씨의 증언이다. 인도에서는 '커미션(commission)'이라 불린다. 제도화돼 있지는 않다. 인도에서 건축업을 하는 동포의 말이다. 

이 사례들에서 보듯이 여러나라의 시장에서 권리금이 거래되고 있다. 다만 이름이 다를 뿐이다. 법의 강제력보다 시장의 관행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나라가 없고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라는 뚱딴지 발언을 한 국토부 관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문제에 정부가 개입해야 

혹시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하는 나라가 없다는 뜻을 잘못 말한 것일까. 취재 중에 만난 전문가 한 사람이 그런 추정을 했다. 세간에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기회에 따져봤다.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한다는 말에는 두 가지의 갈래가 있다. 하나는 세입자 간에 거래한 권리금을 국가가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권리금을 부당하게 높게 지불하는 등 사기를 당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이러한 손실까지 보호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 국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경우는 세입자와 집주인 즉 임차인과 임대인 간에 권리금을 두고 발생하는 분쟁이다. <골목사장 분투기>(인카운터 펴냄)의 저자 강도현 씨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권리금에 대해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대부분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는데 임대계약이 완료되면서 강제로 사업장을 이전하게 되는 경우다. 건물을 리모델링한다든지, 건물이 매도되어 새로운 건물주가 건물의 용도를 바꾼다든지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113쪽) 

강 씨의 지적처럼 권리금을 둘러싼 분쟁은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때의 문제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서 해결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장사가 잘 되어서 권리금이 높아지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점포를 빼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의 친지에게 임차권을 주는 사례가 있었다. 또는 집주인이 월세를 상식수준 이상으로 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법적인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이외에 계약기간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규정할 것인가도 과제이다. 

사안이 복잡해 보이지만 선진국의 경험을 잘 연구하면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국토부 고위관리가 외국에는 권리금 관행이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려버리니 해결책을 찾을 길이 막혀버렸다.

이 문제의 해결방향도 문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부분의 논의의 방향은 용산사태의 해결방안 찾기에 맞춰져 있었다. 뉴타운 등 재개발지역 세입자의 권리금 보상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문제대응 식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항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권리금을 둘러싼 문제들은 현행법상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용산사태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안이 불과 몇 개밖에 나오지 않아 사회적 관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과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두 개의 법개정안에도 권리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명문화돼 있지 않다. 법무부는 권리금 연구 용역 결과를 받고 특별법 제정을 검토했으나 유야무야됐다. 

적어도 쌍용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비교하면 임대차보호법의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자영업자들은 단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상 모든 자영업자들은 독립적인 지위에 있으며 상호 간에 경쟁관계에 있기도 하다. 자본가에 맞서 단결이 요구되는 노동자 계급과 다른 점이다. 

마르크스 이론에는 자영업자가 없어 

자영업자들의 사회구조적 소외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소외계급을 대변하는 좌파정당도 자영업자 문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알아보려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만들어진 200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노동계급이 맞서야 했던 지배세력은 지금과 같은 대기업 대자본이 아니라 쁘띠 부르주아로 불리는 소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새로운 진보사상이었던 자유주의로 무장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에 맞서 공산주의 이론으로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했다. 이 당시의 마르크스 저작을 보면 자유주의자 소상인들은 기회적인 계급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보인다.

지금 한국이나 유럽 등 어느 나라에서도 소상인 자영업자는 노동계급보다 더 소외된 계급이다. 그러나 200년 전의 적대 관계 프레임이 그 뒤로 수정 보완이 이뤄지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렀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익을 각각 대변하는 좌파 우파의 구도에서 자영업자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국민참여당 같은 리버럴 정당이 바로 자영업자들을 대변했다면 좌우의 틈새를 메꾸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국민참여당이 그들의 독특하고 고유한 영역을 떠나서 진보통합의 바람에 사라져 버린 것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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