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보수에 대한 개념규정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거꾸로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 진보의 인간 보수의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진보가 되고 어떤 사람이 보수가 되나? 이런 사례를 통해서 귀납적으로 진보 보수를 정의해볼 수도 있을 것같다.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이해 과정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일단 운을 떼는 차원에서 시작하는 글을 올린다. 

  

  

<어떤 사람이 보수가 되고 어떤 사람이 진보가 되나>

  

이문열과 권영길은 모두 40년대 생으로 지리산의 경상도쪽 자락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이 빨치산 활동을 했다. 이문열의 부친은 가족을 남기고 월북했고 권영길의 부친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그리고 같은 60년대에 서울대학을 다녔으며 작가와 기자라는 글쓰는 직업을 선택했다. 이와 같이 매우 유사한 조건에서 생활했지만 두사람의 이념적 입장 즉 사상은 우리사회 양극의 두 끝점을 차지한다. 무엇이 이들 두사람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했을까?

  

80년대 학생운동권에 처음 주체사상을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90년대초 서해안 바닷가에서 북한이 보내준 잠수함을 타고 평양을 방문했던 인물이다. 그뒤에 그는 동료들을 이끌고 나와 뉴라이트를 만들었다.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게 만든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70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이재오 김문수등은 왜 반성문을 쓰고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일까? 그들의 존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세속적 욕구가 발동했나? 좌파 동료들과 불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2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자유주의자였던 것일까? 

  

70년대 박정희와 맞서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김수환추기경은 90년대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혔다. 그는 변절한 것일까? 그는 양심적인 종교인의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는데 그보다 오른쪽에 있던 한국의 권력이 20년만에 그의 왼쪽으로 옮겨와 그를 다르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념의 착시현상 아닌가?

  

유시민은 강북에 전세 사는 사람도 종부세를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9월 강연에서 소외계층도 보수이고 기득계층도 보수이고 그래서 인간은 모두 보수이다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과학적 근거도 있다. 몇해전의 조사에 의하면 학력별로 보면 초등학교 졸업자가 가장 보수적이었다고 나타났다. 그들은 이사회의 가장 소외계층임이 틀림없다. 

  

우파 좌파, 보수 진보는 유전일까? 정치적 성향은 성장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정설이지만 학자들이 끊임없이 여기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뉴욕대와 UCLA대 연구팀은 2007년 43명에게 본인의 정치 성향(보수주의자냐 자유주의자냐)을 물은 후 컴퓨터 게임을 하는 동안의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이 두 그룹은 뇌 안에서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고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하는 기능을 가진 ‘전방대상피질’의 활동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미국 라이스대학의 존 알포드 교수는 2005년에 1만여쌍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통해 유전적 요인이 정치적 식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2007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 판에 게재된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의 활동을 측정했다. ACC는 의견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하는 기능을 가진 부위이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외동포는 유난히 보수적이다. 왜 그럴까. 이유가 몇가지 있다. 전통적인 이론은 이스라엘 이민자 연구를 통해 나온 동결현상(frozen phenomenum)이다. 이민 떠날 때의 상태에서 정치의식이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북출신등 워낙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민을 떠났으니 이민자가 보수적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세 번째는 내가 명명한 ‘뒤통수론’이다. 해외 이민생활중에는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 어려운 일을 당해 뒤로 넘어질 때 국내에서는 친지들중에 누군가가 붙잡아주지만 외국생활중에는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뒤통수가 땅바닥의 돌뿌리에 닿는 아찔한 경험을 한번이라도 하고 나면 의식뿐 아니라 존재론적 변화가 온다. 그래서 은행잔고가 인격이다라는 말도 한다. 믿을 것은 자신의 돈밖에 없으며 그것이 부족해지면 인격을 지킬 겨를이 없으며 악착같은 사람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런 경험은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의식 즉 보수주의에 빠지게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와중에 진보·보수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불출마 선언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심정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와중에 진보·보수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불출마 선언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심정을 토로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만났더니, 앉자마자 내게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질문을 하더라. 이건 적절치 않은 질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보수다. 그런데 그걸 구분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부분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반기문은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을 예상한 지난달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의 대답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개그맨 배칠수는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독재자 비교하며 조롱했다. 정치권도 시비를 건다. 이쪽과 저쪽을 가지려는 기회주의적 태도 아니냐. 역시기름장어답다.

 

보수논객 류근일씨는 반기문이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전략을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라면 어디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슨 재주가 있기에 그럴 수가 있을까? 무슨 신비스러운 주술이 있기에 사드 배치 반대·탈미친중·개성공단 폐쇄 반대와, 사드 배치 찬성·한미동맹 강화·개성공단 폐쇄 지지·햇볕-퍼주기 반대를 한데 아우르겠다는 건지, 정말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반기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진보냐 보수냐 나누나. 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수당이라고 해서 그런 정책만 내놓고 하는 아니다.”진보적 보수주의는 진보적 우파, 중도우파라고 바꿔서 부를 있다. 이념의 종주국 서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중도우파이다. 중도우파란 우파이면서 좌파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가져다 쓰는 입장이다. 반기문과 윤여준 그리고 서유럽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일맥상통함을 있다. 이념의 세계를 논리만으로 접근하면 미망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자

 

표창원 의원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서 근거로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들었다. 영국에서 보니 보수주의자들이 정의를 말하더라. 그러니 정의는 보수의 덕목이고 정의를 주장하는 자신도 보수주의자이다. 이게 맞는 말일까.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전략적으로 쓰는 말로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과 보수주의는 오랫동안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좌파의 장점인 정의를 가져다 쓰고 있다. 100 전부터 쓰고 있어서 본래 누구의 것인지 저작권을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

 

이처럼 서유럽의 중도우파는 좌파의 장점 여러가지를 빌려다 사용한다.

중도좌파도 마찬가지다. 홍세화씨는 관용을 말하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에 관용이 들어있다. 그러니 관용은 좌파의 덕목인가. 프랑스의 극좌 공산당과 달리 사회당은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파의 장점들을 가져다 쓰고 있다. 관용은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 사회는 남북 분단 때문에 이념 연구가 매우 뒤처졌다. 이념의 이중개념성 또는 중도수렴현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몰이해는 현실 속에서 거칠게 드러난다. 좌나 어느 한쪽으로 신념을 결정하면 이념의 회로를 따라 좌의 가치 또는 우의 가치만을 선택하는 태도가 일관된 올바름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극좌 극우이다.

류근일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말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뜻은 사드 배치를 찬성하며 동시에 반대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며 ·미동맹 강화에 동의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성에겐 여성성이, 여성에겐 남성성이 일부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진보적 보수주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념의 혼란이 관념의 착종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개입해서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념은 본래 복잡한 현실을 알기 쉽게 재단하는 잣대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고 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만났더니, 딱 앉자마자 내게 ‘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 질문을 하더라. 이건 적절치 않은 질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보수다. 그런데 그걸 구분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부분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기고]진보는 진보답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하나

반기문은 ‘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을 예상한 듯 지난달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의 대답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개그맨 배칠수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독재자”와 비교하며 조롱했다. 정치권도 시비를 건다. 이쪽과 저쪽을 다 가지려는 기회주의적 태도 아니냐. 역시 ‘기름장어’답다.

 

보수논객 류근일씨는 반기문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라면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슨 재주가 있기에 그럴 수가 있을까? 무슨 신비스러운 주술이 있기에 사드 배치 반대·탈미친중·개성공단 폐쇄 반대와, 사드 배치 찬성·한미동맹 강화·개성공단 폐쇄 지지·햇볕-퍼주기 반대를 한데 아우르겠다는 건지, 정말 한 번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반기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진보냐 보수냐’로 나누나. 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수당이라고 해서 그런 정책만 내놓고 하는 건 아니다.”진보적 보수주의는 진보적 우파, 중도우파라고 바꿔서 부를 수 있다. 이념의 종주국 서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중도우파이다. 중도우파란 우파이면서 좌파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가져다 쓰는 입장이다. 반기문과 윤여준 그리고 서유럽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이념의 세계를 논리만으로 접근하면 미망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자. 

 

표창원 의원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서 근거로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들었다. 영국에서 보니 보수주의자들이 정의를 말하더라. 그러니 정의는 보수의 덕목이고 정의를 주장하는 자신도 보수주의자이다. 이게 맞는 말일까. 잘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전략적으로 쓰는 말로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과 보수주의는 오랫동안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좌파의 장점인 정의를 가져다 쓰고 있다. 근 100년 전부터 쓰고 있어서 본래 누구의 것인지 저작권을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

 

이처럼 서유럽의 중도우파는 좌파의 장점 여러가지를 빌려다 사용한다.

중도좌파도 마찬가지다. 홍세화씨는 관용을 말하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에 관용이 들어있다. 그러니 관용은 좌파의 덕목인가. 프랑스의 극좌 공산당과 달리 사회당은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파의 장점들을 가져다 쓰고 있다. 관용은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 사회는 남북 분단 때문에 이념 연구가 매우 뒤처졌다. 이념의 이중개념성 또는 중도수렴현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몰이해는 현실 속에서 거칠게 드러난다. 좌나 우 어느 한쪽으로 신념을 결정하면 이념의 회로를 따라 좌의 가치 또는 우의 가치만을 선택하는 태도가 일관된 올바름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극좌 극우이다.

류근일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말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뜻은 사드 배치를 찬성하며 동시에 반대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동의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성에겐 여성성이, 여성에겐 남성성이 일부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진보적 보수주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념의 혼란이 관념의 착종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개입해서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념은 본래 복잡한 현실을 알기 쉽게 재단하는 잣대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고 있다.
 

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연일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수 있는 한나라당과 여권 전체가 연일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랄 있는 정강에서 보수를 빼자는 발언 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위원이 4 언론 인터뷰에서자기 스스로를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 의원은 같은 트위터에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의원 등도 비판에 가세했으며 자유총연맹은 반대 성명서를 냈다. 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같다

나에게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리자는 뜻으로 읽힌다. 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 있겠나.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는 이미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 조갑제 대표가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 박효종 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보수 대신 좌파·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그러면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에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3세계에서는 보수는 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조차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종인 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을 찾기도 어렵고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안된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우파라고 말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이유가 무얼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관용법상의 문제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좌파는 입에 올리기에 두려운 말이었다. 좌파를 사용할 없다보니 우파만 외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중반경부터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함께 우파·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1980년대에는진보·보수 사용되지 않았음을 기억해내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 태어났지만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 하나일 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개념상의 위계가 흐트러졌다. 예를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는 지난 20 동안 우파의 대표적 사조였는데 이것은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이 보수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진보진영도 진보를 사용하는 불편해질 것이므로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 한다 보수를 빼자는 발언 때문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위원이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기 스스로를 ‘나는 보수다’라고 찍고 가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전여옥 의원은 같은 날 트위터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의원 등도 비판에 가세했으며 자유총연맹은 반대 성명서를 냈다. 김 위원의 발언이 과연 한나라당의 핵심 가치인 보수 색깔 지우기인지, 단지 보수라는 단어를 지우자는 것인지가 쟁점인 것 같다. 

나에게는 한나라당의 가치, 보수의 가치를 내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라는 단어를 던져버리자는 뜻으로 읽힌다. 김 위원이 어떻게 당의 강령 첫 줄에 들어있는 가치를 부정할 수 있겠나.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효과는 이미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지난 2005년 조갑제 대표가 “보수가 진보다”라고 말한 이후 2009년 박효종 교수의 정명논란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좌파가 진보라는 좋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진보·보수 대신 좌파·우파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그러면 왜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멍에를 지고 있나. 이걸 설명해보자는 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영국의 귀족 지주 계급이 전통적 가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보수할 것이 없는 제3세계에서는 보수는 말 자체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제시대와 전쟁을 거치면서 보존해야 할 가치들을 잃어버린 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조차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김종인 위원의 말처럼 보수라는 용어를 강령에 규정한 정당을 찾기도 어렵고 이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몇 개 안된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우파라고 말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우파 대신 보수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얼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관용법상의 문제다. 우파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 의존 관계에 있는 좌파에도 설자리를 주어야 하는데 6·25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좌파는 입에 올리기에 두려운 말이었다. 좌파를 사용할 수 없다보니 우파만 외짝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눈에 뜨인 것이 보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1990년대 중반경부터 보수는 진보라는 짝과 함께 우파·좌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1980년대에는 ‘진보·보수’가 사용되지 않았음을 기억해내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름대로 필요가 있어 태어났지만 그 과정에 사회과학적 검증이 빠져있었다. 보수는 우파의 여러 사조 중 하나x일 뿐인데 이것이 대표선수로 등록이 되어버리니 개념상xXX




의 위계가 흐트러졌다. 예를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는 지난 20년 동안 우파의 대표적 사조였는데 이것은 보수주의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지 않는다.

한나라당 비대위도 이 문제를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보수진영이 보수라는 단어를 안 쓰게 되면 진보진영도 진보를 사용하는 데 불편해질 것이므로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사회의 특산품인 진보·보수 용어 사용이 적절한지도 따져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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