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제너레이션과 386

 

 

지난 81년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집권에 성공했다. 혁명이 아닌 선거로 집권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이었다. 프랑스 사회당을 이끌고 엘리제궁에 입성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특유의 노회함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서 서방의 어느나라보다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다. 미테랑은 임기 7년의 대통령직 재선에 성공해 14년을 재임했다. 

 

몇차례 동거내각을 거치기는 했어도 이 시기 프랑스는 사회당이 장기집권한 나라여서 사회주의의 특성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부가가치세가 20%를 넘어 북유럽나라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았다. 부가가치세가 높다는 것은 다른 세금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91년 프랑스 땅을 밟은 필자는 미테랑 치하의 마지막 4년을 보냈다. 이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수차례 들었던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난다. “프랑스에서 욕심을 내면 불행해진다.” 욕심을 미덕으로 보는 “보이스 비 앰비셔스!”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사회당이 집권한 프랑스에서 가장 보호받는 계층은 서민층이다. 한국에 비교하면 9급공무원 정도의 월급생활자층이다. 이들은 납부할 세금은 가장 적으며 반대로 국가로부터 가족수당 집세수당등의 혜택이 집중돼 있다. 의료와 교육등이 모두 무료이므로 적은 월급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낸 가장 전형적인 인간형은 정직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이다. 

 

욕심이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은 고통을 받는다. 베르나르 타피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타났다. 미테랑정부의 장관을 역임했으며 마르세이유축구단의 구단주였던 그는 크레디리요네 은행의 부실화를 초래한 대형 권력비리사건에 연루됐다. 그런데 부패한 기성세대를 젊은이들이 응원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빈농출신의 타피가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올라 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좌절을 보상받는 심리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서민층에 사회혜택이 집중되는 반면 중산층 이상은 과도한 세금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프로축구선수 톱모델등 고소득자들중에는 프랑스를 탈출하는 ‘세금망명’ 사례도 나타났다. 

 

이같은 사회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미테랑 집권시기에 중고등학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을 흔히 미테랑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한국의 386들과 공통점이 많다. 통상적으로 미테랑이 집권한 81년 대학 입학자부터 386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같은 연배인데다 다같이 정치적인 격변기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결과로 드러난 모습은 정반대이다. 

 

한국의 386이 처해 있었던 시대의 정권은 정통성을 잃은 군사정부에다가 이념적으로 극우였다. 그래서 왼쪽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나갈수록 선이라는 정서가 있었다. 마침내 386들은 한국전쟁 이후 끊어졌던 마르크르 레닌주의를 복원했다. 북한의 김일성주의가 대학가를 지배했다. 이 두가지 흐름은 지금까지 진보진영에 이어져 오고 있다. 

 

이에 반해 미테랑 제너레이션은 우경화 경향을 보였다. 미테랑의 집권시기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이들은 좌파가 진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진보가 현실권력을 장악하고 실현된 시대에서 진보는 이미 보수이기 때문이다. 

 

미테랑 제너레이션은 자신들을 실업의 세대 또는 극빈층생활지원금(RMI) 세대라고 자조했다. 어느 나라든 좌파정권이 경기를 진작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같다.

 

이같이 상반된 모습을 이렇게 설명할수 있지 않을까. 버스운전사가 버스를 왼쪽으로 급커브하면 승객은 오른쪽으로 기을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리면 승객들은 왼쪽으로 기운다. 

 

건강한 사회의 젊은이들은 정치 사회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늘 지배이데올로기의 반대쪽에 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 미테랑 세대와 386은 정반대의 길로 나갔지만 그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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