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과 모범생' 안철수에겐 '벌레' 보이겠지만

[김제완의 '좌우간에']<2> 안철수 '이념 무용론' 함정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질문을 받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성향을 간편하게 측정하는 시금석이나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가 이런 요구에 부응해서 몇 해 전 자신의 이념 성향을 측정하는 설문기사를 내보냈다. 16개의 설문에 대답하도록 했는데 첫 번째는 "대북 지원에 대해서"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①북핵과 무관하게 현재보다 확대 ②북핵과 무관하게 현재 수준의 유지 ③북핵 해결까지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만 ④북핵 해결까지 모든 지원 전면 중단 (중앙일보 2008년 5월16일)등이다. 

이중에서 ①②번은 진보적이고 ③④번은 보수적 대답으로 설정했다. 진보 보수 두 가지 답안만을 내도되지만 네 가지 중에서 고르도록 한 것은 진보 보수의 정도까지 측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값을 모두 더한 뒤에 문제 출제자의 지시에 따라 일정값으로 나누면 자신의 이념 수치가 도출된다. 

이외에도 국가보안법 개정, 북한 인권 문제, 한·미 FTA, 복지를 위한 증세, 대기업 출자총액, 고교 평준화, 양심적 병역 거부, 사형제도 폐지 등 우리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설문 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며 어떤 추세를 보이고 있는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위 설문을 가능하게 한 전제와 결론의 인과관계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각각의 사안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한다. 즉 어떤 문제에는 진보적인 반면 또 다른 문제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갖는다. 이때 진보적 입장의 숫자와 보수적 입장의 숫자를 모으고 그 양적 크기를 재료로 해서 설문응답자가 진보 중도 보수 중 어느 쪽인지를 수치로 환산해서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서 다른 의견을 갖으며 그에 따라서 좌우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설명해보자.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4월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좌파적 견해를 0, 우파적 견해를 1로 본다면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001010, 혹은 110101식의 의견을 갖게 되어 있다. 게 중에는 드물게 000000, 혹은 11111도 있을 것이다.(이들을 이른바 꼴통이라고 부른다)" 

민주당 좌클릭 논란에 대한 김대호의 의견 중에 한 문단을 따온 것인데 이 글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디지털은 "0"(온)과 "1"(오프)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표시한다. 0과 1의 조합으로 무한히 다양한 숫자를 만들어, 문자, 음성, 그림을 표시하고 전송한다." 

디지털의 세계에서처럼 어떤 사람이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좌파적 견해(0)가 몇 개이고 우파적 견해(1)가 몇 개인가를 보고 그것을 세어보면 된다는 관점을 던져주고 있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좌를 여섯개 우를 네개 선택했다면 중도좌파가 된다.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진술이 지금 커다란 도전에 봉착해 있다.

올해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율에서 박근혜와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안철수의 발언 때문이다. 외모나 생각이 온건해 보이는 안철수가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청춘콘서트에서의 발언을 들어보자. 

"평범한 사람들을 놓고 봤을 때, 보수와 진보를 도대체 구분할 수 있는가? 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문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교육문제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북한 문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할 텐데, 구분이 어렵다." 

나아가 진보 보수를 구분하려는 사람을 벌레에 비유했다. 

"보수와 진보로 자꾸 나누는 이유가 뭘까. 비유를 들어 보겠다. 평온한 평지에 어느 날 벽을 만들어서 그늘과 습지를 조성하면 거기에는 벌레들이 많이 살게 된다. 벽을 없애자고 할 때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벌레들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억지로 나누는 사람들은 담 밑에서 자기 나름의 이익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다." 

ⓒ뉴시스


같은 취지의 발언이 지난해 9월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화면에서도 발견된다. 이 문제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그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의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교육문제는 진보, 가족문제는 보수라고 엇갈린 선택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안철수는 사람들이 엇갈린 선택을 하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다"고 단언하고 그런 구분을 하려는 사람은 "바로 벌레들이다"라고 극언한다. 

안철수의 발언과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와 비교해보자. 전제는 같은데 결론이 정반대이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와 김대호의 의견 그리고 안철수는 모두 사안에 따라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직후부터 행로가 갈라진다. 중앙일보와 김대호는 진보의 값과 보수의 값을 더해서 어느 쪽이 더 많은가를 보면 어떤 사람이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판별할 수 있다고 본다. 전제와 결론 두 가지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보 보수 구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똑같은 사실을 보면서 한쪽은 진보 보수의 구분의 근거로 보고 있고, 다른 쪽은 진보 보수의 구분이 불가하다는 근거로 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발설한 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말실수이거나 일시적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 그의 신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3일 전남대 특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진보·보수 이념에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데 이념은 필요치 않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고 그런 구분을 하려는 사람은 벌레라는 안철수의 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주장한 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성립하려면 자신이 진보라고 믿는 사람은 올곧게 진보만을 선택해야 하고 보수는 보수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극좌거나 극우가 아닌가. 김대호의 말로는 "이른바 꼴통"이다.

그는 왜 이런 엉뚱한 말을 한 것일까.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발언의 함의를 곱씹어 보았다. 

여기서 사족을 한마디 붙인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안철수 발언의 모호함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놓은 글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동시에 물러설 수 없는 논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의견이 옳은 것이라면 '좌우간에'라는 타이틀을 걸고 좌파 우파를 구분해서 연구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며 심지어 필자가 벌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과대학을 나와서 IT 업계에서 일을 했다. 이과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추론을 하게 된다. 진보 보수라는 이념의 세계는 사회과학 학계에서도 정리가 잘 안 돼 있는 분야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엉뚱한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그가 카이스트 교수시절 새벽 시간까지 연구실에 있다가 숙소에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인적이 없는 도로의 건널목에 홀로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처럼 늘 반듯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의 눈에는 이렇게 비춰진 것이 아닐까. 진보면 진보이고 보수면 보수여야지 왜 어떤 일엔 진보이고 다른 일엔 보수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관된 대답이 가능한 자연과학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혼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판단만으로 결론을 낸다면 상황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그의 인식이 설사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라도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 그의 생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기존 정치권에 냉소적이거나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 진보 보수로 패를 지어 싸우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이념문제라면 손사래를 치며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들, 그들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는 두 번째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안철수의 발언이 힘이 센 것은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자. 안철수는 사람들이 진보 보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다고 했다. 필자는 이 발언의 전제와 결론이 즉 전자와 후자가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입증하려고 했다. 여기서 자기 발등을 찍는 말이지만 부득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논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의 발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자가 근거로서 효력이 없다고 해서 후자도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이지 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참모들이 다른 적당한 근거를 찾아서 바꿔주면 해결될 문제다. 지금 우리는 학문적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의 발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는 일이 일차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그 결론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분명한 근거가 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갔으며 그래서 진보 보수 구분하는 것도 부질없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제기돼왔다. 

안철수에게 개인교습을 했다고 알려진 김호기 교수와 김근식 교수도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호기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서구에서는 "보수ㆍ진보의 커다란 정책의 차이가 없"다면서 "전세계가 탈 이념시대로 나아가는데 정작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치열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근식도 "안철수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제 시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사르트르가 좌파 우파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그의 명저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그런 견해를 피력했다. 김호기는 위의 인터뷰에서 다니엘 벨의 수렴이론을 소개했다. 좌파는 중도좌파를 거쳐 우파는 중도우파를 거쳐 점차 가운데로 수렴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좌파 우파의 특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우파적 시각에서 좌파의 시대는 갔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안철수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각도에서 조명해봤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그의 발언이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호기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 않은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색깔논쟁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념 갈등을 논의하기 위한 도구인 진보 보수 구분을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안철수 자신은 정치적인 발언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무당파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념에 대한 혐오감도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 이념에 따른 구분을 하려는 사람들을 그는 "벌레"라거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하했다. 그러나 그렇게 혐오한다고 해서 이념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어찌됐든 안철수의 "벌레"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 보수 규정이 심각한 혼돈상태에 놓여있음을 잘 보여준다.

보수시대의 진보정권, 진보시대의 보수정권

[주장] 노무현의 실패가 주는 역설적 교훈... 진보시대에는 진보정권이 들어서야
보수의 시대가 있고 진보의 시대가 있다. 보수의 시대는 국민 다수가 보수를 원하는 시대이고 진보의 시대는 국민 다수가 진보를 원하는 시대다. 대개는 보수의 시대에는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진보의 시대에는 진보정권이 들어선다. 진보정권이 힘을 다하고 한계를 드러내면 보수의 시대가 오고 보수정권이 들어선다.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나사못처럼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뒤틀며 앞으로 진전한다. 나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 이같은 역사 발전의 순환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노무현이 집권하기 직전 프랑스에서는 조스펭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내각이 집권했다. 프랑스 국민은 좌파대통령 미테랑의 14년 집권에 지쳐 오른쪽으로 선회할 것을 절실히 원했다. 그 결과 미테랑의 임기가 끝날 즈음인 1993년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사회당은 참패했다. 

힘있게 집권한 우파정권은 그러나 집권 후 국민들에게 점수를 크게 잃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던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3% 이내로 맞춰야 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했다. 이전의 좌파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고 많이 베풀었으나 우파정권은 세금을 많이 걷고 베풀어주지 않았다. 민심이 돌아서자 시라크는 1997년 의회해산 조기 총선거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때의 선거에서 우파가 패해 리오넬 조스팽이 이끄는 좌파내각이 들어섰다. 대통령은 우파가 내각은 좌파가 담당한 이른바 동거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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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프랑스 정치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됐다. 우파정부가 요구되는 우파의 시대에 좌파내각이 들어선 것이다. 사회당 내각은 상당부분 우파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경제가 좋아져서 실업율이 한자리 수로 내려갔다. 조스펭의 인기도 한동안 고공행진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조스펭에게 국민들은 궤멸적인 패배를 안겨줬다. 1차선거에서 극우파에게 밀려 3등을 한 것이다. 다음날 조스펭은 정계은퇴하고 낙향했다. 좌파가 좌파답지 못하고 우파정책을 쓴 것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2002년 조스팽이 패했던 해에 노무현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지금 와서 보면 참여정부도 조스팽 내각과 같은 운명의 도정에 놓여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며 괴로워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가 있었으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등 보수정책을 사용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다. 결국 조스팽에 이어서 노무현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다. 필자가 아는 조스팽은 노무현과 같은 연배로 정직하고 고지식한 성정도 비슷했다.

이제 한국사회는 또다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국민들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부터 뚜렷하게 의사를 보여주고 있다. 전면적 무상급식과 단계적 무상급식이 맞부딪친 몇 차례 선거에서 번번히 무상급식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상급식은 유럽에서도 북유럽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려운 급진적인 정책이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뚜렷한 의사표현에 지난 2년 동안 치러진 선거마다 패배했다.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는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당강령에서 보수를 삭제하려고 했으나 전통 보수진영의 반발로 인해 논의가 중단됐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 54%가 보수삭제에 찬성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까지 바꿨다.

국민들이 집권세력에 느끼는 실망감은 이런 것이다. 수출이 잘 되고 경제상장이 되면 아랫목의 온기가 곧 윗목까지 전해올 것이라고 믿었다. 낙수효과니 떡고물이니 하는 말을 믿었지만 그게 허당이란 것을 알게 됐다. 양극화는 더 심해져 재벌과 대기업은 곳간에는 외화가 그득한데도 서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덕분에 국민들 다수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성장보다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최근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노무현이 능동적으로 보수정책을 썼듯이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써야 한다. 그는 벌써부터 당강령을 새로 만들면서 진보적인 색채로 물들이고 있다. 요즘 언론은 '새누리당 좌클릭'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자크 들로르 이야기를 붙여본다. 다시 지난 1990년대 중반 프랑스의 상황이다. 들로르는 당시 유럽대통령 격인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쳐 국민적인 신망이 높았다. 사회당은 인기가 없었지만 사회당 출신 들로르는 여론조사에서 우파의 시라크보다 늘 앞섰다. 이때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들로르는 충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우파의 시대에 좌파 대통령이 되면 순조로운 역사의 순항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나는 정치인에게 정권 획득은 숙명이고 무조건 선이다라는 세간의 말이 옳지 않음을 알게 됐다.

보수가 좌클릭 쇄신하고 강령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조스팽과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정치세력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들은 엄청 피곤해진다.

덧붙이는 글 | 참여정부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무현은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그 이유를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사례가 프랑스의 조스팽정부에서도 나타났는데 그것을 타산지적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맞는 진보의 시대입니다. 이때 또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노무현 정부처럼 시대와 정권이 서로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혼돈을 국민이 겪어야 합니다.

(5) 진보시대로의 진전 멈추지 않았다

[김제완의 '좌우간에']<24> 18 대선 세대별 투표성향 분석


18대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에게 투표했던 48%의 국민들 사이에서 패배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은 지난 91년 민주화의 좌절 끝에 일어난 청년들의 자살을 연상케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세대별로 엇갈린 투표 때문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인터넷상에서 노인 무임승차 폐지 서명운동과 기초노령연금 폐지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3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좋은일만생긴다'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다. 대선 직후인 20일 시작한 서명은 최초 목표인 7천명을 넘겨 이틀 만에 9천31명이 서명했다.

이 누리꾼은 "노인들이 국민 복지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들이 즐겨 이용하는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해달라"며 "이래야 복지가 어떤 것인지 코딱지만큼이라도 느끼시려나…"라고 비꼬았다. 50~60대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으니 이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세대 '갈등'은 5년 전의 현상이고 지금부터 5년은 세대 '전쟁'이 될 것"이라며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젊은 층과 노년층이 한정된 정부재원을 두고 싸워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세대 충돌의 원인을 데이터로 확인했다. 필자가 작성한 아래 두 개의 도표에는 16대 대선과 18대 대선의 세대별 유권자수와 투표율 등이 담겨있다. 이 도표들을 비교하면 몇 가지 의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2040세대는 10년 전보다 더 진보적인 투표를 했고 5060세대는 더 보수적인 투표를 했다. 세대 간의 이념 양극화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50대의 경이로운 투표율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님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이전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투표율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표작성자 주 : 화살표로 표시한 18대 대선의 투표율 득표율 증감은 16대 대선 투표율 득표율과 비교한 것임

50대 인구 두배로 늘어나 문재인 실점도 두배로 

위의 도표 두 개를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2002년 총투표율이 70.8%일 때 50대 투표율은 83.7%였고, 2012년 총투표율이 75.8%일 때 50대 투표율은 89.9%였다. 이 두가지를 같은 조건에 놓고 비교하기 위해서 2002년 총투표율이 2012년과 같은 75.8%였다면 어떻게 될까. 50대 투표율도 늘어나 89.6%에 이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50대 투표율은 사실상 89.6%에서 89.9%로 늘어난 것이며 이것은 거의 같은 수치이므로 증감의 의미가 없다. 이보다 앞선 15대 대선때에도 50대 투표율은 88.9%였다. 50대는 이번 대선뿐 아니라 15대 16대 대선에서도 90% 가까운 투표율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보도한 "경이로운 투표율 90%" "50대의 투표반란" "숨은 보수표의 출현" "묻지마 투표" "박근혜 몰표"등은 오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들이 통용되는 이유는 50대가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작 눈여겨봤어야 했던 것은 50대 인구의 급증이다. 16대 대선에서 412만명이었으나 18대에는 778만명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투표율이 아니라 인구증가가 경이적이다. 50대 연령층이 하나 더 생겨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55년생에서 63년생까지의 베이비붐 세대가 온전히 50대에 편입된 데 따른 현상이다. 이러한 급격한 인구증가는 투표 결과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문재인은 50대 유권자로부터 37.4%를 얻어서 10년전 노무현후보가 얻은 40.1%에 비해 2.7% 줄었지만 득표수는 거꾸로 151만표에서 259만표로 108만표나 늘었다. 박근혜는 62.5%를 얻어서 이회창의 57.9%에 비해 4.6% 늘었다. 그러나 득표수는 218만표에서 433만표로 물경 두배가 늘었다. 여기가 바로 이번 대선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지점이다. 득표율은 불과 4.6%가 늘었는데 득표수는 두배로 늘다니... 언뜻 이해가 안되는 마술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50대연령층이 하나더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50대가 크게 집결해서 판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인구구성 변화에 따른 효과라는 사실이다.

50대 득표전투에서 박근혜는 문재인에게 174만표를 더 얻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6대에는 이회창이 노무현에 비해 67만표를 더 얻었으므로 실제로는 107만표가 더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50대 몰표를 숫자로 환산하면 107만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종 승부는 108만표 차이로 갈라졌으므로 여기가 승부처인 셈이다. 

인구가 두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같은 비율로 실점을 했으니 잃어버린 표도 두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뿐 아니라 언론이나 정치평론가들중에도 이 문제에 대해 경계주의보를 내놓은 사람이 없었다. 단일화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이 사실을 지적하지 못한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도 모두 반성문을 써야 한다.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른 패착이 50대공략 실패였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부동산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피해자가 주로 주택 소유층인 50대인데도 그들의 좌절감을 위무해주는 정책이 없었다는 점이 먼저 꼽힌다. 그리고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친노세력이 노무현이 추진했던 한미FTA를 반대한 것이나 보수층의 안보의식을 건드린 이정희효과 등을 꼽을 수 있다.

진보 보수 이념양극화 : 2040 진보지지 높아지고 5060 보수지지 높아져

50대 이외 연령대의 투표는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2040세대는 10년 전에 비해서 더욱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문재인의 20대 득표율은 65.8%로 노무현의 59%에 비해 6.8% 늘었으며 득표수는 270만 표에서 314만 표로 44만 표가 늘었다.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아 졌다거나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주장 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의 30대 득표율은 66.5%로 노무현의 59.3%에 비해 7.2% 늘었으며 득표수는 351만 표에서 392만 표로 41만 표 증가했다. 40대의 득표율은 48.1%에서 55.6%로 7.5% 늘었으며 득표수는 287만 표에서 385만 표로 100만 표나 증가했다. 10년 전 40대 득표율을 보면 노무현 이회창 양후보가 거의 동률이었는데 비해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이 박근혜보다 11.5% 앞섰다. 40대는 2030과 5060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선거전문가들은 40대가 어느쪽으로 기우는가를 주시했다. 그렇게 볼 때 40대의 진보쏠림현상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중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40세대와 반대로 5060세대는 10년 전에 비해 뚜렷한 보수성향을 보였다.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62.5%로 이회창의 57.9%에 비해 4.6% 높아졌다. 6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72.3%로 이회창의 같은 연령대 지지율 63.5%에 비해 8.8%나 높아졌다. 반대로 5060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10년전 노무현 지지율에 비해 각각 2.7% 7.4% 낮아졌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연령대에 따른 진보 보수 이념양극화 현상이다. 50대 돌풍, 안철수현상과 함께 이번 선거의 특징 세가지 중 하나이다. 이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40 세대는 진보시대로의 진전을 계속해왔다는 점이다. 경제활동 주역이며 사회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의 진보 투표성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이 사회가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0대가 10년 후에 얼마나 보수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50대가 10년 전에 노무현 이회창과 거의 같은 지지율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40대가 문재인에게 11%의 지지를 더 보인 것은 특기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데이터만 놓고보면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앞으로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하려면 보수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도표의 문제점 보정작업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작성한 것이다. 그래서 두가지의 보정작업을 거쳐야 유효한 값을 갖는다. 여기서는 기술적인 문제와 자료의 미비로 보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먼저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의 지지율에는 권영길의 득표율이 포함되지 않았다.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두 명의 진보후보의 득표를 더해야 야권 단일후보 문재인의 득표와 대조를 이루며 비교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권영길의 득표율 3.89%를 각 세대별로 어떻게 가산점을 매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권영길의 득표율만큼의 오차를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보정을 요하는 작업이 한 가지 더 있다. 도표에서 인용한 18대 대선의 문재인 박근혜 지지율은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이다. 출구조사 결과는 48.9%대 50.1%으로 격차는 1.2%인데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최종결과는 48%대 51.6%으로 격차가 3.6%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자료 사이에는 2.6%만큼의 오차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를 사용한 것은 중앙선관위의 연령대별 득표율 집계가 1-2개월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한 2.6%가 각 연령대별로 얼마만큼 가중치를 두어야 할 것인지도 전문가의 영역이어서 손을 댈 수 없었다. 다만 위 도표의 박근혜 후보 득표율에 이만큼을 더 더해야 실재의 값의 근사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은 3%정도 더 높아야 하며 18대 대선의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2%정도 더 높아져야 한다. 어림잡아서 약 5% 이상의 오차가 발생한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이념양극화 현상이 위에서 지적한 것보다는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시간을 들여서 작성한 이 데이터의 가치는 이같은 오차로 인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50대의 90%에 가까운 투표성향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인구구성의 변화로 50대 연령층이 하나더 생겼다는 사실과, 이번 선거에서 새로이 나타난 세대간의 이념양극화 현상을 확인하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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