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와중에 진보·보수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불출마 선언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심정을 토로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만났더니, 앉자마자 내게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질문을 하더라. 이건 적절치 않은 질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보수다. 그런데 그걸 구분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부분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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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은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을 예상한 지난달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의 대답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개그맨 배칠수는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독재자 비교하며 조롱했다. 정치권도 시비를 건다. 이쪽과 저쪽을 가지려는 기회주의적 태도 아니냐. 역시기름장어답다.


보수논객 류근일씨는 반기문이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전략을 쓰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라면 어디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슨 재주가 있기에 그럴 수가 있을까? 무슨 신비스러운 주술이 있기에 사드 배치 반대·탈미친중·개성공단 폐쇄 반대와, 사드 배치 찬성·한미동맹 강화·개성공단 폐쇄 지지·햇볕-퍼주기 반대를 한데 아우르겠다는 건지, 정말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반기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진보냐 보수냐 나누나. 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수당이라고 해서 그런 정책만 내놓고 하는 아니다.”진보적 보수주의는 진보적 우파, 중도우파라고 바꿔서 부를 있다. 이념의 종주국 서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중도우파이다. 중도우파란 우파이면서 좌파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가져다 쓰는 입장이다. 반기문과 윤여준 그리고 서유럽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일맥상통함을 있다. 이념의 세계를 논리만으로 접근하면 미망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자


표창원 의원은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서 근거로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을 들었다. 영국에서 보니 보수주의자들이 정의를 말하더라. 그러니 정의는 보수의 덕목이고 정의를 주장하는 자신도 보수주의자이다. 이게 맞는 말일까.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전략적으로 쓰는 말로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과 보수주의는 오랫동안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좌파의 장점인 정의를 가져다 쓰고 있다. 100 전부터 쓰고 있어서 본래 누구의 것인지 저작권을 따지기도 어렵게 됐다


이처럼 서유럽의 중도우파는 좌파의 장점 여러가지를 빌려다 사용한다.


중도좌파도 마찬가지다. 홍세화씨는 관용을 말하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당의 강령에 관용이 들어있다. 그러니 관용은 좌파의 덕목인가. 프랑스의 극좌 공산당과 달리 사회당은 중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파의 장점들을 가져다 쓰고 있다. 관용은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 사회는 남북 분단 때문에 이념 연구가 매우 뒤처졌다. 이념의 이중개념성 또는 중도수렴현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몰이해는 현실 속에서 거칠게 드러난다. 좌나 어느 한쪽으로 신념을 결정하면 이념의 회로를 따라 좌의 가치 또는 우의 가치만을 선택하는 태도가 일관된 올바름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극좌 극우이다.


류근일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말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뜻은 사드 배치를 찬성하며 동시에 반대하는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에 찬성하며 ·미동맹 강화에 동의하지만 개성공단 폐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남성에겐 여성성이, 여성에겐 남성성이 일부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진보적 보수주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념의 혼란이 관념의 착종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개입해서 정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념은 본래 복잡한 현실을 알기 쉽게 재단하는 잣대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고 있다.

 

진보와 보수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이 오래되고 논쟁적인 질문에 상식적이고 교과서적인, 그래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답을 찾아 봤다. 초등학생 수준의 어법으로 말한다. 진보가 필요한 시대에는 진보가 옳고 보수가 필요한 시대에는 보수가 옳다. 국운이 승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선순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난조에 빠지는 사회가 있다.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보수시대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는 경우이다. 이런 파행을 피하기 위해 고심 끝에 자신을 희생한 정치인의 사례를 소개하고 반기문의 경우와 비교해봤다. 

20여년전인 1994년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7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차례 지내고 퇴임할 무렵이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지만, 국민들은 사회당의 장기집권과 높은 실업률에 염증을 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파정권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이때 좌파 정치인 자크 들로르가 나타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테랑 정권에서 경제·재무·예산부 장관을 거친 들로르는 1985년 ‘유럽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임기 첫해에 각국의 국경을 폐쇄하는 솅겐조약을 체결해 유럽연합을 실질적인 하나의 영토로 만들었다. 1992년에는 유럽단일화폐 유로화를 탄생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하는 등 하나의 유럽을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 

10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부터 그의 인기는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다. 당시 파리에 거주했던 필자의 기억으로 그는 우파의 자크 시라크보다 여론조사에서 뒤진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두고 그는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정치인에게 집권은 최고의 선이라는 말을 들어왔던 필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들로르는 불출마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프랑스어통역사 최정화씨의 저서에서 인용한다. 첫째, 지금까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에 봉사해 왔을 뿐, 최고의 지위에 이르기 위해 정치를 한 것은 아니다. 둘째, 프랑스의 체제에 많은 개혁과 쇄신을 가해야 하는데 대선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의회 내 지지 세력이 없다. 셋째는 개인적인 사항이었다. 1995년이면 일흔 살이 되며 지금까지 50년을 쉬지 않고 일해 왔으므로 여생은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삶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었다.

들로르가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프랑스 언론들은 “부인이 이겼다”고 비꼬았다. 사회당 지지자들은 그가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고 관념적 위선에 빠진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국민 다수가 오른쪽으로 선회하기를 바라고 있는 시기에 좌파 대통령의 재등장은 나라를 혼선에 빠뜨릴 수 있음을 우려했다. 결단의 시기도 놓치지 않았다. 우파정권에 대한 선호와 좌파 후보에 대한 인기 때문에 꼬인 매듭을 불출마 발표로 단칼에 풀어버린 것이다

20여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반기문과 들로르는 여러 면에서 비교대상이 된다. 반기문은 세계의 대통령, 들로르는 유럽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들로르는 70세였고, 반기문은 73세에 국제기구 수장으로서의 10년 임기를 마치고 조국에 돌아왔다. 귀국시점이 대선 시기인 것도 같다. 개인적 인기가 높다는 점도 같다. 다른 점이라면 두 사람의 이념상 위치가 반대쪽이란 사실이다. 

들로르가 브뤼셀에서 파리로 돌아왔을 즈음 집권당인 사회당이 총선에서 대패해 좌파 대통령, 우파 총리의 좌우동거 내각이 들어서 있었다. 반기문이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온 시기의 한국은 어떤가.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해 국회는 여소야대이며 촛불정국에서 유권자 지형이 왼쪽으로 이동했다. 진보대통령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반기문은 개인적 인기의 힘으로 1위 자리를 놓고 문재인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들로르와 반기문이 처한 상황이 흡사해서 요즘 정치평론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평행이론을 보는 듯하다. 

주시해야 할 것은 두 사람의 선택이다. 들로르는 자신의 정체성과 지지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시대의 요구에 따랐다. 동양의 언어로 말하면 살신성인이랄까. 그 결과 좌파 정치인이면서 우파시대의 길을 열었다. 그는 은퇴 후 파리에서 ‘노트르 유럽’이라는 연구소를 창립해 유럽통합 이념 연구를 이끌었다.

[기고]반기문과 들로르의 평행이론

반기문은 어떨까. 그는 귀국연설에서 대선출마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사심 없는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결정하기 전에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필자가 보기에 국민 다수가 진보정책을 원했던 진보시대에 보수정권이 집권했기 때문이다. 시대와 정권이 엇갈리면 헬조선으로 전락한다. 반기문의 출마가 이미 결정적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최종적인 선택의 시간이 얼마간 남아있다. 반기문은 사심 없는 마음으로 들로르의 고뇌를 숙고해 보기 바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181655001&code=990100#csidx9bbdf52e9bea3549f0e0544e3a2e147 

문재인은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억울하더라도…
[김제완의 좌우간에] 토론 방향을 호남 민심에 맞추자


"호남에서 친노 딱지 붙으면 죽음이다. 친노가 마마보다 무섭다. 십자가 밟기처럼 나는 친노가 아니다, 이렇게 말해야할 판이다."

강기정 의원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최근 영입된 오기홍 변호사는 광주에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왜 하필 그 당이냐."

두 사람의 발언 모두 최근 시사 팟캐스트에서의 고백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의석의 5분의 3인 180석 또는 3분의 2인 200석까지 얻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제1야당의 분당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분당의 이유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이지만 그의 결단은 호남 민심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나 국민의당이 아니라 호남 민심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위의 생생한 사례에서 보이듯이 호남 민심의 변화는 분명하다. 문제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가이다. 

원인을 두고 진보 언론에서 식자 간에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시점을 보면 결코 사변적인 토론이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4월 총선의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2000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구가 30개에 이른다. 선거 현장에서 야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도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한번 선거 벽보를 붙이면 여간해서 떼어내기 어렵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날아가는 화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식자들이 토론을 통해서 제공해줘야 한다.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영남 패권 논란 

올해 초부터 <프레시안>과 <한겨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자 간의 집중 토론 주제는 영남 패권이다.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돌아선 것이 친노의 영남 패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김욱 교수의 책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 출간이 계기가 됐다.

나는 이 토론 주제는 잘못 설정된 프레임 위에 서있다고 보고 토론자들에게 논점 전환을 요구한다. 영남 패권 논리는 호남 민심을 이해할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그것에 사생결단하듯 올인하는 토론자들의 태도는 잘못됐다고 본다. 토론을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토론이 유용한 것이 되려면 호남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갈등도 완화되고 새로운 전망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장은주, 정희준 교수와 김욱 교수의 토론 또 김의겸 <한겨레> 기자와 김욱 교수의 토론은 지나치게 격렬하다. 진실의 언어는 그렇게 거칠지 않다. 호남 민심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격렬함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데도 호남 민심을 둘러싼 논란이 블랙홀처럼 영남 패권으로 빨려드는 이유가 무언가. 

김욱 교수의 문제 제기 방법이 너무나 공격적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남 패권주의자라는 말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나아가서 전두환의 영남 패권과 동일시하는 김욱 교수의 발언에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성적인 토론이 되지 못하고 창과 창이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만 들린다. 

격렬함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토론자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동안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했던 영남 패권 주장이 지금 와서 폭발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호남 민심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격렬함은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민심이란 것이 바다와 같아서 영남 패권이라는 이유 한 가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남 민심 폭발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도 일면적 진실을 전면화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국면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영남 패권이 호남 민심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은 결과라면 나는 내부에서 찾아보겠다. 보수화, 모욕감, 당파성이란 세 개의 키워드로 설명해 보려 한다. 

보수화-모욕감-당파성, 호남 민심에 접근하는 다른 길들 

광주의 5060 세대가 종합 편성 채널 가운데 'TV조선'을 가장 많이 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론 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보다 50대 이상 세대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 2월 17일 <무등일보>의 광주 시민 여론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10/20대 55.7%, 30대 44.9%, 40대 40.5%, 50대 28.6%, 60대 17.5%로 나타났다. 20대에 비해 50대는 절반 수준이다. 종합 편성 채널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이런 현상을 놓고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나왔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지난 1월 <김보협의 더정치>에서 이런 말을 한다. 지난 연말부터 호남 민심의 가치 지형 또는 호남 이념 지형을 조사해보니 눈여겨볼 변화가 나타났다는 거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여전히 호남이 다른 지역보다 진보적 색채가 월등히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호남 여론이 보수화됐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런데 딱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조금 다른 구석이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차기 대통령으로 진보적인 대통령을 원하는지 보수적인 대통령을 원하는지 이런 질문에는 반반이 나타나거든요. 호남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이게 10년 전이면 상상하기 어려운 건데 이런 부분들도 나타나고 있거든요." 

"성지에서 세속으로"라는 김욱의 발언에도 그런 함의가 숨어있다. 그동안 광주 정신이라는 대의에 따라 진보적 가치를 위한 투표를 해왔지만 이제는 세속적인 욕망을 감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들은 호남의 문재인 비판과 안철수 지지의 배경에 보수화 현상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광주 정신'에 의해 억눌려왔던 호남인들 일부의 보수 성향이 커밍아웃하는 것 아닐까.

추미애 의원에 대한 의문 한 가지.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유세 기간 중에 "좌동영 우미애"라는 말도 나왔을 만큼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데 그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리고 노무현 탄핵에 나선다. 나는 이런 반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 당시 만났던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에게 직접 물었다.

김성호 의원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추미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에 연락하려고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 그의 참모들이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기가 셌던 그는 격노했고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다.

호남도 추 의원과 같은 모욕감을 느낀 것 같다. "호남 사람이 내가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 싫어서 찍었지"나 "호남 정치인들과 정치하기 참 힘들다" 등,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경위가 어떻든 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한마디들이 호남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 이렇게 상처 주는 말들은 아주 오래 간다. 

지난해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호남의 상처를 덧나게 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이 신장 투석을 하게 된 것이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학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에 호남 사람을 비하한 글이 있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도 자극적이다. 문재인의 부친이 양말 장사를 했는데 "전남 상인"에게 돈을 받지 못해서 사업이 망했고 그 때문에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호남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선한 인상의 문재인을 악마화한 것이 아닌가.

나는 <재외동포신문>에서 일할 때 기자들에게 이런 주문을 했었다. 복잡한 상황에서 국내 동포의 이익과 재외 동포의 이익이 부딪칠 때 재외 동포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보고 그 관점에서 기사를 써라. 그러면서 이것이 "재외 동포 당파성"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사회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보면 편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재외 동포의 영향력이 워낙 적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당파성이란 파당성과 다름없는 말로, 사회의 여러 복합적인 상황을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태도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 노동 계급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도 이런 방법론적 편향을 사용해왔다. 김욱 교수의 영남 패권 주장이나 '호남 자민련' 여론도 호남 당파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문재인, 호남 민심 치유 위해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 한다. 헬조선, 이생망이라 한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국민 일인당 소득이 감소했다. 자기 자식을 때려 죽이는 사건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어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를 잡아먹는다. 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 경제 민주화 등 진보 공약으로 집권해놓고 방향을 보수로 틀면서 국정이 난조에 빠진 것이다.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은 이 정부를 "전두환보다 못한 미친 정권"이라고 말했다. 이런 극언이 공감을 일으키는 시대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총선 압승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오로지 투표밖에는 무기가 없는데 그것마저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다.

김욱 교수와 장은주, 정희준 교수에게 제안한다. 영남 패권 논란은 이제 중지하고 호남 정치와 정권 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을 찾아보자. 거슬러 올라가 복기해보면 뒤늦은 해법이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와 문재인 세력은 통합이 아니라 연대를 해야 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이 통합하고 다른 사람은 연대한다. 통합과 연대의 원칙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생각이 다르고 지지 세력의 입장도 다르다. 그러므로 해법은 연대에 있다.

3월 2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당을 향해 전격 통합을 제안했다. 입으로는 통합을 말하더라도 손으로는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통합한다 해도 당내에 '호남 동맹' 같은 그룹을 허용한다. 호남 정치 세력의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해주고 권력 배분도 합의한다. 이를테면 한 지붕 두 가족 또는 계약결혼같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손을 잡고 박근혜 정부 심판을 외친다면 어떨까. 호남 민심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호남의 식자들이 연대를 위한 풍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주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의원은 다시 광주를 방문해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고의가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호남 민심에 상처를 주었다면 치유의 책임이 있다. 가깝게는 총선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길게 보면 대선 승리를 위해서이다. 문재인 의원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항변할 사람들은 광주의 더좋은자치연구소 이정우 연구실장의 발언을 귀에 담아야 한다.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정서(반문재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더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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