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내준 문제 풀기(1) 진보주의와 자유주의 어떻게 다른가
진보의 미래 1권에는 많은 물음표가 보인다. 수사법상 강조하기 위해 의문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노대통령이 실제로 헷갈려서 던진 질문도 여러개 보인다. 그중의 하나를 골라봤다.
“진보주의와 자유주의가 자꾸 혼동이 되고 미국에서는 영어로 ‘자유주의(liberalism)'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진보주의’로 번역한 것도 있는데 진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이 관계들을 잘 한번 정리해 봤으면 좋겠고요. (122쪽)”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를 바깔로레아 시험문제라 생각하고 답을 만들어보자. 노대통령이 당부한 대로 이론적인 길로 가지 않고 사례를 통해서 접근해 본다.
"미래를 말하다" 번역자의 고의적 오역
우리사회에서 자유와 진보를 돌러싼 혼돈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 혼돈의 뿌리는 미국에 닿아있는 것같다. 위의 문제에서 거론한 자유주의를 진보주의라고 번역한 책은 다름아닌 노무현이 애독한 “미래를 말하다”이다. 여기서 시작해보자. 이 책의 원제는 자유주의자의 양심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자유주의자를 진보주의자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직접 고민을 털어놨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기술적으로 몇가지 고민에 빠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 두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liberalism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자유주의’다. ‘진보적’이라는 의미로 progressive라는 단어가 있지만 책의 전체 구도속에서 본다면 보수주의를 뜻하는 conservatism의 상대 개념으로 liberalism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 ‘진보주의’로 해석했다. 이에 더해 보통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나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의 상대개념으로 liberal democracy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석되어온 관행도 한몫을 했다. 둘째, conservative mouvement 를 과연 '보수주의 운동'으로 옳은지도 의문이 이었다. ...”
이것은 번역상의 기술적인 고민의 차원을 넘는 것이다. 단지 번역자의 개인적인 고민에 맡겨두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같다. 한국 사회과학계의 인식적 착종이나 우리 사회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번역자가 liberalism를 진보주의로 번역했다면 정작 progressive는 무엇으로 번역했을까이다. 그것을 똑같이 “진보적”으로 번역했다면 두가지를 어떻게 구별해 주었는지를 밝혀야 했지만 그런 언급은 찾을 수 없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이 책에서 progressive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두 단어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라는 단어는 서양 사회과학계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주로 과학계에서 기술발전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비밀 하나를 찾아낼수 있다. 진보-보수의 조합은 유럽 미국에서 사용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특산품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왜 우리사회가 진보 보수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는가는 별도로 기술한 바가 있다. (이 게시판에 올린 필자의 ***번글 "진보 보수는 한국사회의 특산품" 참조.)
그것을 간략히 다시 설명해보자. 8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진보 보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독재정부와 민주화운동권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을까.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사용되고 혁신적 혁명적이란 용어는 보완적으로 사용된다.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사용되며 일본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같은 용어가 사용된다.
미국의 리버럴리즘을 일본에서는 자유주의라고 표기하는데 한국에서는 진보주의라고 바꿔서 사용하지 않으면 어색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보라는 용어가 우리사회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는 또다른 증거가 될 것이다.
미래를 말하다의 번역자는 이런 조건에서 고의적으로 오역을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고백하면서 논리적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구절을 뒤이어 붙이는 우를 범한다. 그는 자유주의를 진보주의로 번역했다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의 상대개념으로 해석되어온 관행을 근거로 들었다. 진보주의로 번역된 자유주의가 좌파적이라면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우파적이다. 두가지가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가 아니다. 번역자는 자신의 오역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옹호하는 사례를 들었어야 했는데 그 반대의 사례를 덧붙인 것같다. 진보 보수를 둘러싼 혼돈상의 한면으로 보여진다.
자유총연맹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이름을 보면서 어느 미국동포가 깜짝 놀라서 쓴 글을 몇해전 어느 게시판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50년대부터 활동해온 한국반공연맹을 89년에 개편해 설립됐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설립목적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항구적으로 옹호 발전"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동포의 놀라움을 한줄로 말하면 이런 것이다. “자유라는 말은 진보적인 것인데 왜 한국에서는 극우보수가 점유하고 있나?”
그의 혼란과 의문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착각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사회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각각 보수와 진보진영에 속하며 서로 맞서는 구도여서 자유주의자는 진보주의자로 여겨져왔다. 중도우파가 진보이고 극우파가 보수이므로 덜우파와 더우파가 대립하는 국면이다. 이때 중도우파의 대표주자인 자유주의자가 진보의 보루를 지키고 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74년 창립후에 진보적 작가들이 모여서 활동하던 민주화운동의 기지였다. 약칭 자실이라고 불렸다. 그런 자실이 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7년에는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했다.
전통과 권위가 있는 단체가 이름을 두 번이나 바꾼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87년 개명당시의 정황이다. 당시 나는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최장집교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번역할 만한 책 몇권을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거론한 책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외국에서 살다왔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자유는 이처럼 박대를 받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작가들이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이전 시기인 70년대에는 자유라는 기치 아래 민주화운동이 모였었는데 불과 10년만에 자유라는 말이 갖고 있던 진보적인 힘을 상당부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위의 한국자유총연맹같은 극우단체가 자유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여긴 것으로 설명할수 있다. 당시 한국의 민주화운동진영은 집권자인 극우 반공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전쟁이후 맥이 끊긴 좌파전통을 자력으로 복원해내고 있었다. 이때는 서부개척시대와 같이 왼쪽으로 왼쪽으로 나가려 했고 더많이 왼쪽으로 나가는 것이 그만큼 더 옳은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였다.
70년대까지는 자유가 진보적 가치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80년대 들어서 좌파이념이 등장하면서 자유가 서있던 진보의 자리를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던 무렵의 일이다.
자유주의는 현재의 미국과 70년대 한국에서 의심할 것없이 진보였다. 그러나 그뒤에 한국사회가 좌편향으로 변화하면서 자유가 진보의 지위를 상당부분 잃었듯이 미국의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진영이 좀더 왼쪽으로 더 이동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리버럴을 진보주의자로 번역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사회와 시기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바깔로레아 시험문제 수준이 될수 있다고 봤는데 답안은 그에 한참 못미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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