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보수적이다 

-왜 강북에 전세사는 사람이 종부세를 반대하나

  

지난 9월28일 저녁 노무현시민학교 마지막 강연에 나선 유시민 전장관은 “모든 인간은 보수적이다”는 발언으로 청중들에게 통쾌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여의도 CCMM 회관에서 열린 이날 강의에서 유 전장관은 정치인으로서 발설하기 어려운 자유롭고 날카로운 생각을 드러냈다. 

  

유 전장관이 강연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사생취의(捨生取義) 사리취의(捨利取義)의 정신이다. 지금처럼 리(利)만 취하고 의(義)를 취하지 않는 시대는 희망이 없는 타락한 시대라고 비판하면서 노무현정신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가장 열띤 호응을 받는 부분은 오히려 노무현정신과 배치되는 베블런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였다. 

  

"미국 19세기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남긴 저서 “유한계급론”은 100여년전에 나온 책중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베블런은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대학에 있으면서 재벌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집에서 홀로 죽었는데 뒤에 제자들이 와서 유서를 보니 가장 빨리 간소하게 장례를 치루고 유골은 바다에 뿌리라고 했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모든 인간은 보수적이다. 빈부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왜냐, 인간은 제도속에서 살아가는데 진보란 제도의 변화이다. 그런데 진보는 늘 피곤하다.” 유전장관은 이런 예를 든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패야 된다”는 인식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 인식전환의 과정 즉 진보의 과정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나?”

 

한나라당이 저소득층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왜그런가? 베블런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전장관은 “왜 강북에 전세 살면서 종부세를 반대하는지가 이해된다”고 말한다. 유시민은 계속해서 베블런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보수가 기본이고 진보는 그저 가끔씩 이기는 것이다. 보수가 나라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을 때 잠깐 진보가 잡는 것이다. IMF사태와 같이 국가가 부도날 때나 저쪽 후보가 아들이 문제가 있었을 때와 같이... 그래서 아주 이상하게 두 번 이긴 것이다. 이것이 진보의 슬픈 운명이다.(폭소와 박수) 그래서 왜 이런 시대에 태어났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부당한 불행의식이다.”

  

유시민의 이 발언은 대부분 노무현지지자인 청중들에게 통쾌함과 낭패감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통쾌감은 카타르시스 효과와 같이 먼저 다가와 폭소를 낳았고 낭패감이 뒤이었다. 그래서 사회를 본서영교씨는 귀신에 홀린 것같다고 말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강연이 끝난뒤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보수주의가 당연한 것이고 진보주의는 보수주의가 실패할 때에나 비로소 제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일을 할 시간을 그들이 정해주는가?” 

  

이에 대해 유시민은 “진보의 참담한 좌절을 체험한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와 격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소개한 한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말로 청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지만 위로 격려의 말이라면서 진지하게 반박을 해올 사람들의 예봉을 사전에 꺾어버렸다. 그래도 여운이 남아 생각을 더 이어본다.  

  

세상에는 보수적인 인간도 있고 진보적인 인간도 있다. 다만 사람들이 진보보다는 보수를 편하게 여긴다든지 보수적인 사람이 더 많다든지 이런 것은 허용할수 있다. 유시민이 인용한 유한계급론을 찾아보니 8장에서 관련된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일체의 에너지를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부유한 사람뿐 아니라 절대빈곤자도 보수라는 베블런의 견해를 발전시켜 유시민이 “모든 사람은 보수이다”라고 한 것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 표현은 유한계급론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말은 베블런의 말이 아니고 유시민의 말이다. 

 

이 말을 통해서 요즘 그의 마음의 풍경을 짐작할수 있었다. 불과 몇 달전에 그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노무현대통령을 불의에 잃고 상심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보수적이다”는 말을 할 때 유시민은 가장 신바람이 났고 청중들도 가장 큰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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