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트와 김일성 

 

 

4월15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폴 포트는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대량학살중 하나인 킬링필드의 주범이다. 그는 75년부터 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농민천국과 급진적 사회주의를 내걸고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사유재산과 종교의 자유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개조'라는 미명 아래 과거 론놀정권에 협력한 지식인은 물론 부녀자 어린이등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백만명을 학살했다. 

 

본명은 살로스 사르.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28년 프놈펜북부 콤퐁솜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40년대 반프랑스 저항운동에 참가했고 49년 프랑스 유학중 공산주의 사상에 몰입했다. 

 

53년 귀국후 사립 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75년 어둠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친미 성향의 론놀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하야한 뒤 크메르 루주를 이끌고 북부 산림지대에 피신했다. 80년대말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사실상 크메르 루주를 이끌어왔다. 

 

그와 같이 압제없는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한다는 공산주의자가 어떻게 해서 다름아닌 제 동포 전인구의 4분의1을 죽이는 엄청난 비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우선 그에게서 관념적인 또는 이상주의적인 면모가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폴 포트는 부농 가계 출신으로 베를렌느의 시를 음송하기를 즐겨했고 불교적인 평온에 잠겨있기를 좋아했다. 이러한 면이 자신의 극좌적인 한계를 보완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극좌적인 성향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작용한 듯하다. 다시 말해 현실과 과학을 중시하는 공산주의의 덕목을 저버리는 쪽으로 작용한 듯이 보인다. 

 

극좌나 극우는 늘 건너편 상대방에 대한 심각한 훼손과 결핍을 의미한다. 폴 포트의 극좌는 이처럼 좌파의 덕목인 정의의식만이 지나치게 전면화되었을 뿐 조국의 동포들에 대한 사랑같은 우파의 교훈이 결핍된 것이다. 

 

우리는 폴 포트를 보면서 히틀러를 연상하게 된다. 극좌나 극우가 전체사회에 대한 보완적인 기능에 머물지 않고 강제적으로 전면화되면 인간을 파괴시키는 바이러스같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폴포트의 죽음 98년 5월 오니바) 

 

위 글은 지난 98년 4월 폴포트의 죽음 직후 필자가 프랑스 동포신문 오니바에 발표했던 칼럼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폴 포트는 부농 가계 출신으로 베를렌느의 시를 음송하기를 즐겨했고 불교적인 평온에 잠겨있기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이 사실은 당시 프랑스 신문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기억된다. 베를렌느는 19세기 프랑스 상징파 시인으로 랭보의 연인이었다. 

 

폴포트보다 앞선 시기에 파리유학을 했던 등소평이 르노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학비를 조달했었다. 폴 포트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바로 여기서 즉 좌파 전사가 아닌 부르조아지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는 데서 킬링필드의 동기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인 좌파지도자와 달리 그는 지주집안에서 태어나 우파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짐작을 해볼 수가 있다. 그의 존재 내에서 선천적인 우파 성향과 후천적으로 얻어진 좌파 성향이 결합된 것 아닐까? 극우와 극좌가 결합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참고가 될까 해서 역사 속에서 극우와 극좌의 연대 사례가 있나 살펴봤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간의 극적인 동맹이 맺어졌던 경우가 보인다.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불가침협정과 함께 상호이익에 맞게 영토를 분할하려는 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명에 그치고 만 전술적 동맹으로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나치 볼셰비키”라는 극소수 집단의 형성말고는 다른 이데올로기적 결과를 겨져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존재안에서 극좌와 극우의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사례는 찾지 못했다. 폴포트의 경우를 유심히 살펴보는 이유는 바로 김일성이 이와 비슷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카스트로와 달리 서구의 좌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유는 주체사상의 의식성때문이다. 주체사상의 3대요소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인데 이중 의식성은 주체사상을 매우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정주영이나 박정희의 "하면된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김일성주의에는 가부장적인 유교적인 요소가 스며있다. 

 

폴포트와 김일성은 극좌와 극우가 결합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 두 정권이 보여준 특이한 모습들은 이런 특별한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공산주의의 쇠망의 시대에도 북한이 살아남는 힘은 역설적으로 이같은 우파적 속성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두사람은 좌파와 우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흥미있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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