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많이 겪으면 우파가 된다

 

 

직장상사중에 김상무라는 지독히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있었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중에는 진보적인 인사들을 찾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극단적인 기독교 신자들중에 진보는 거의 없는 것같다. (기독교와 좌파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였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말했을때 기독교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리라.) 

 

교회 장로인 김상무는 식사하면서도 상대방이 기독교 신자인지 살피지도 않고 묵상기도를 해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을 보면 천주교를 믿건 불교를 믿건 가리지 않고 교회에 나오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언젠가 다들 퇴근하고 난 뒤 빈 사무실에서 그와 둘이서 몇시간동안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보고 교회 나오라 설득하고 나는 그에게 우파가 뭐고 좌파가 뭔지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나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맹목적으로 보수가 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물론 소통 불능이었다.   

 

어느날 그가 아들상을 당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동료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는 의외로 어둡지 않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게서 비극적인 아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이 열다섯에 죽은 아들은 장애아였는데 뇌관련 중증장애였다. 15년동안 집밖에 한번 나가지 못하고 할머니의 등에 엎혀 살다가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그와 몇해동안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상가를 나오면서 누구나 그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김상무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복할수 없는 불행, 매일 같이 반복되는 고통, 비관적인 전망이 반복되면 인간은 어떻게든 상황에 대응한다. 그런데 어떻게 대응하며 변하는 것일까. 먼저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시련에 처하면 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교회에 찾아가서 울면서 통성기도하는 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같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연대의식보다는 자신을 즉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선거때 어느쪽으로 바람이 불던 간에, 사회적인 변화에 의한 영향보다 그의 실존적인 동기에서 나온 입장이 강하게 작용할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보수적인 입장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우파로 이어질 것이다.  

 

시청앞에서 반공 시위하는 극우파 노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가장 험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식민지와 이차대전 한국전쟁 남북분단 보릿고개 군사혁명등. 나이가 70-80세정도라면 이런 경험을 다같이 갖고 있다. 게다가 천만 이산가족이라 불리는 이북출신들은 혈육이 남북으로 나뉘는 단장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왔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진보좌파가 될수 있을까. 보수일 수밖에 없다. 그들 모두가 김상무이다.  

 

시청앞의 우익데모에 나온 완고한 노인들을 보고, 그들의 폭언을 전해들으며,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한다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정치적 행동에 반대하는 것과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사회의 구성원이자 앞세대인 그들의 경험은 우리의 것이다. 이념이 발단이 된 문제는 이념에 대한 이해로서 치유될수 있다.

김수환추기경은 변절자였나

 

몇해전 열린우리당이 여당이었을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했었다. 이때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사설까지 동원해 김수환추기경을 비난했다. 이 민감한 때에 김추기경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던 사람들이 눈믈을 흘리며 그에게 변절자라고 말했다. 한겨레 경향 사설에도 변절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는 과연 변절자일까. 이미 하늘 나라에 있는 분이니 이제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같다. 내가 보기에 그는 변절한 것이 아니고 늘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기독교정신이라는  변함없는 자리에 서있었다. 그가 서있던 자리를 이념 잣대로 보면 중도우파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기 지배이데올로기는 극우였다. 그는 권력보다 왼쪽에 서있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념좌표상 진보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서 행동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김대중 노무현시기로 들어서자 지배이념이 중도내지 중도좌파로 바뀌었다. 그러자 김추기경은 권력보다 또는 변화된 사회보다 오른쪽에 위치지워졌다. 그래서 보수로 변신한 듯이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추기경은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정신이라는 기둥을 한번도 놓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늘 기독교였지 진보나 보수가 아니었다. 다만 사회가 변함에 따라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삐에르신부(아베 삐에르)는 김추기경과 여로모로 비교되는 인물이다. 삐에르신부도 김추기경처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그가 늘 1등이었다. 그도 유태인 학살에 대한 수정된 입장을 표함으로서 즉 유태인 학살 숫자 400만명이 과장됐다는 의견을 피력한 뒤 좌파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당해 지방의 수도원으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김수환추기경이나 삐에르신부는 늘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시대가 왼쪽으로 급격하게 변하거나 그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들이 변절자로 보이게 된 것이다. 이념의 착시현상이다. 

 

김수환추기경이 변절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려면 이처럼 좌우이념이라는 잣대를 이용해야 한다. 그를 변호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도만 해서는 안되고 이념을 알아야 한다. 좌우이념은 이처럼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인데 한국에서는 혼란을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이념이 주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보수적이다 

-왜 강북에 전세사는 사람이 종부세를 반대하나

  

지난 9월28일 저녁 노무현시민학교 마지막 강연에 나선 유시민 전장관은 “모든 인간은 보수적이다”는 발언으로 청중들에게 통쾌감과 낭패감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여의도 CCMM 회관에서 열린 이날 강의에서 유 전장관은 정치인으로서 발설하기 어려운 자유롭고 날카로운 생각을 드러냈다. 

  

유 전장관이 강연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은 사생취의(捨生取義) 사리취의(捨利取義)의 정신이다. 지금처럼 리(利)만 취하고 의(義)를 취하지 않는 시대는 희망이 없는 타락한 시대라고 비판하면서 노무현정신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날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가장 열띤 호응을 받는 부분은 오히려 노무현정신과 배치되는 베블런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였다. 

  

"미국 19세기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남긴 저서 “유한계급론”은 100여년전에 나온 책중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베블런은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대학에 있으면서 재벌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가 집에서 홀로 죽었는데 뒤에 제자들이 와서 유서를 보니 가장 빨리 간소하게 장례를 치루고 유골은 바다에 뿌리라고 했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모든 인간은 보수적이다. 빈부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왜냐, 인간은 제도속에서 살아가는데 진보란 제도의 변화이다. 그런데 진보는 늘 피곤하다.” 유전장관은 이런 예를 든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패야 된다”는 인식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 인식전환의 과정 즉 진보의 과정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나?”

 

한나라당이 저소득층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왜그런가? 베블런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전장관은 “왜 강북에 전세 살면서 종부세를 반대하는지가 이해된다”고 말한다. 유시민은 계속해서 베블런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보수가 기본이고 진보는 그저 가끔씩 이기는 것이다. 보수가 나라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을 때 잠깐 진보가 잡는 것이다. IMF사태와 같이 국가가 부도날 때나 저쪽 후보가 아들이 문제가 있었을 때와 같이... 그래서 아주 이상하게 두 번 이긴 것이다. 이것이 진보의 슬픈 운명이다.(폭소와 박수) 그래서 왜 이런 시대에 태어났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부당한 불행의식이다.”

  

유시민의 이 발언은 대부분 노무현지지자인 청중들에게 통쾌함과 낭패감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통쾌감은 카타르시스 효과와 같이 먼저 다가와 폭소를 낳았고 낭패감이 뒤이었다. 그래서 사회를 본서영교씨는 귀신에 홀린 것같다고 말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강연이 끝난뒤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보수주의가 당연한 것이고 진보주의는 보수주의가 실패할 때에나 비로소 제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일을 할 시간을 그들이 정해주는가?” 

  

이에 대해 유시민은 “진보의 참담한 좌절을 체험한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와 격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소개한 한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말로 청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지만 위로 격려의 말이라면서 진지하게 반박을 해올 사람들의 예봉을 사전에 꺾어버렸다. 그래도 여운이 남아 생각을 더 이어본다.  

  

세상에는 보수적인 인간도 있고 진보적인 인간도 있다. 다만 사람들이 진보보다는 보수를 편하게 여긴다든지 보수적인 사람이 더 많다든지 이런 것은 허용할수 있다. 유시민이 인용한 유한계급론을 찾아보니 8장에서 관련된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일체의 에너지를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부유한 사람뿐 아니라 절대빈곤자도 보수라는 베블런의 견해를 발전시켜 유시민이 “모든 사람은 보수이다”라고 한 것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 표현은 유한계급론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말은 베블런의 말이 아니고 유시민의 말이다. 

 

이 말을 통해서 요즘 그의 마음의 풍경을 짐작할수 있었다. 불과 몇 달전에 그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노무현대통령을 불의에 잃고 상심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보수적이다”는 말을 할 때 유시민은 가장 신바람이 났고 청중들도 가장 큰 박수로 화답했다.

 

+ Recent posts